1930년대 문단에서 휴머니즘 비평의 중심에 있던 절산 윤규섭 평론가(1909년~미상)의 글을 모은 전집이 다시 출간됐다.
지역의 문인을 발굴해 소개해 온 최명표 문학평론가는 <윤규섭 비평전집1 인식과 비평> (신아출판사)을 펴냈다. 윤규섭>
이는 지난 2003년 그가 출간했던 <인식론적 비평과 문학> (새미)의 수정·보완판이다. 인식론적>
1937년 4월 조선일보에 실은 윤규섭 평론가의 첫 비평 ‘문단항변’부터 1946년 7월 <신문예> 의 ‘민족문화론’까지 월북 이전의 작품 61편을 연대순으로 묶었다. 더욱이 윤 평론가의 얼굴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신문예>
최명표 평론가는 “지난 작업에 모자란 부분을 채웠다”며 “전주지역 고교 출신으로 <문장> 이나 <인문평론> 에서 주요 비평을 떠맡다시피 하고, 비평계를 끌고 나간 사람임에도 조명이 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다시 책을 엮었다”고 말했다. 인문평론> 문장>
윤규섭 평론가는 남원 운봉 출신으로 운봉보통학교와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청년운동에 뛰어들었다. 동맹휴학을 주도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며, 1930년 언론, 출판, 결사, 연구의 자유를 촉구하는 격문을 배포하다 서울로 압송돼 2년간 영어생활도 했다.
이후 1937년 그는 조선일보에 ‘문단 항변-그 사상적 혼미에 대하야’를 발표하면서 비평을 시작한다.
당시 그는 조선 문단을 지배하는 사상적 경향을 민족문학, 계급문학, 자연주의 리얼리즘, 심리주의 ,낭만주의, 휴머니즘이 각축하는 혼란상으로 짚었다.
그는 휴머니즘론에서 필요성을 인정하고 기존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개념 정립을 시도했다. 휴머니즘의 역사적 고찰보다는 현대적 의의와 조선 문단에서 의미를 구명하는데 중점을 뒀다.
휴머니즘은 유물론적 토대 위에서 리얼리즘과 구별돼야 하고 정당한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야 말로 과학적 사상의 임무라는 주장이었다.
어떤 문학 조류일지라도 조선의 비평적 토양과의 관련성 등을 살펴보지 않고 함부로 영합하거나 거부하는 지식인의 태도는 크게 반성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당시 그는 휴머니즘론이 왜곡 전개되는 원인을 이론의 수입자가 보수적 이론가였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평소 “비평가는 문화적 사회적 관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비평가의 덕목으로 문제의 제출과 파악면에서 지도성을 내세우기도 했다. 또한 비평은 시대의 중심 과제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1930년대 후반 임화 시인·평론가와 비평에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당대 유력한 비평가에게 도전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전략적 이유와 함께 두 사람의 관점에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윤규섭 평론가는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서 활동했고, 조선문학가동맹의 대표 주자였던 임화 시인과는 노선이 달랐다.
윤규섭 평론가는 조선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전개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하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상사적 인식을 중시하며 객관적 현실의 구체적 파악을 강조했다는 게 최 평론가의 설명이다.
하지만 윤규섭 평론가는 월북으로 우리나라에서 잊혔다. 그는 민족문학을 화두로 삼아 논지를 펼쳐다 광복 이후에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자주적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운동에 참가했지만 가족을 데리고 월북했다. 이후 필명을 윤세평으로 바꾸며 북한문학의 비평적 기반을 닦는 일에 힘을 쏟았다.
특히 고대 문학 작품을 정리하고, 출판과 교육에 종사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조선문학 강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때 ‘춘향전’, ‘홍길동전’, ‘전우치전’, ‘심청전’ 등을 주해했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 북한에서 민족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 받았다.
그가 고전문학을 체계화할 수 있었던 바탕은 광복 전, 전주의 고서점에서 완판본을 대거 입수했기에 가능했다.
최명표 평론가는 “그가 쓴 ‘완판’이라는 수필에는 전주 다가동 천변에 즐비하던 책방에서 완판본을 구한 일화가 있다”며 “이를 가지고 월북해 고전문학을 연구할 수 있었다”고 들려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북한에서도 해방후 세대가 비평계를 장악했고 이 즈음 윤규섭 평론가도 황해도의 귀순자 농장으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평론가는 “그동안 문학적으로 반드시 거명돼야 할 비평가를 연구 공간 너머에 방치하고 있었다”며 “개인의 자유와 문학적 신념이 정치적 이유로 훼손되는 일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윤규섭의 문학적 삶과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국 근대문학 비평사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길 바란다”며 “비평적 글쓰기를 했던 문학적 고뇌가 동시대인에게 공유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최명표 문학평론가는 전북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소장한 문학 자료를 모아 <전북지역시문학연구> , <전북지역아동문학연구> , <이익상문학전집> , <유엽문학전집> , <김창술시전집> 등을 펴냈다. 김창술시전집> 유엽문학전집> 이익상문학전집> 전북지역아동문학연구> 전북지역시문학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