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후백제 성터 추정지' 역사적 실체 드러나

전주박물관, 시굴조사 발표 / 철원 궁예 도성과 유사 구조 / 기와 등 후삼국 추정 유물도

▲ 11일 전주 한옥마을 오목대에서 후백제 궁성과 도성의 규모를 예측할 수 있는 성벽 흔적이 발견된 가운데 국립전주박물관 관계자가 현장 설명회를 갖고 있다. 추성수 기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주성황사중건기’(全州城隍祠重建記) 등의 문헌자료와 일제강점기 지적도, 항공사진 등으로만 확인됐던 ‘후백제 성터 추정지’의 일부가 드러나 역사적 실체로서 복원될 가능성이 생겼다.

 

국립전주박물관은 11일 전주시 교동 오목대서 ‘후백제 도성벽 추정지 문화재 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오목대 동쪽지점과 남서쪽 지점의 성벽 추정지와 이 두 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공개됐다.

 

공개된 성벽 추정지의 암반층과 퇴적단면에는 흙과 기와 돌 등이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다. 이에 대해 전주박물관 최흥선 학예연구관은 “후삼국 시대에 전쟁이 잦았기 때문에 흙과 기와를 섞어 쉽게 성을 만들어야 했던 것 같다” 며 “철원에 있는 궁예의 도성도 이와 유사한 구조다”고 말했다. 최 연구관은 이어 “전근대시대 성곽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구조다”고 덧붙였다. 실제 전근대시대에 성을 쌓는 방식인 ‘판축법’(토성을 쌓을 때 흙을 한 겹씩 다져 쌓는 방식)과 ‘물림쌓기’(고구려성의 기단 축조방식) 등과는 다른 구조였다.

 

전주박물관에 따르면 성벽의 규모는 추정 너비 8m고 높이는 3~5m 내외다. 현재, 토성벽의 2분의 1은 1985년께 기린로 신축과정에서 유실됐기 때문에, 실제는 이보다 높았을 것이라는 게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물은 연와문 수막새와 어골문(魚骨文) 기와 등 수 십여 점이 공개됐다. 경주박물관의 김유식 학예연구실장은 “출토유물이 신라하대(9세기)부터 고려 전기(10세기)의 양식과 유사하다” 며 “후삼국 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이와 함께 후백제 산성으로 추정되는 순천 해룡산성과 전주시 동고산성 등에서 나온 유물과도 유사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특히 순천의 해룡산성은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가 주둔하던 성이다. 그는 승주(昇州-순천)출신의 지방 세력으로 견훤과 함께 고려의 왕건에게 귀부했다.

 

그러나 공개발표 이후 간담회에서는 후백제 도성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차용걸 충북대학교 교수(역사교육과)는 “입지조건은 상당히 특이하지만 오목대 남서쪽 부근은 잔존하는 성벽이 단절됐고, 높이도 낮기 때문에 성으로 규정짓기 어렵다” 며 “게다가 토석혼축(土石混築-돌과 흙을 섞는 방식)방식으로 담장을 두르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차 교수는 이어 “전주부사에 나온 후백제의 잔존성벽과도 비교·분석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발굴 조사단 측은 “이 지역이 소실되기 전인 1948·1954년 항공사진을 보면 남서쪽으로 뻗는 성벽의 라인이 연결되는 것으로 판독된다”며 “구릉지 정상과 가깝기 때문에 성벽이 높지 않아도 방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서 반론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