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 이현수 씨(66)는 산행 중이라고 했다. 지난 1일, 교육부는 ‘이달의 스승’ 6월의 인물로 정읍 출신 퇴직 교사인 이 씨를 선정했다. 어디서도 거론된 바 없는 인물이었던 데다 교육부가 선정 않겠다던 ‘생존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정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면 이미 남강교육상과 전북교육대상을 받았고, 제자들이 이 씨에게서 받은 가르침과 감동을 직접 증언하는 등 교사의 롤 모델로서 충분하다는 평가도 있다. “보도자료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만나 이야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그를 설득해 지난 5일 정읍교육삼락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시종 자신의 제자들을 가리켜 ‘어린이’라고 불렀다. 30여년 전에 가르칠 당시의 기억 그대로인 듯했다.
- 먼저 큰 상을 받게 되신 것에 대해서 축하를 드립니다. 교육부의 실사, 평가 과정들이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상이라기보다도, 후배 교사들한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선배 교사를 찾기 위한 교육부 방침인 것 같아요. 지난달 29일 30일 교육부에서 실사를 나왔어요. 제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터뷰한 바도 없고. 능교초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제 제자 3명을 불렀더라고요. 저는 나중에 제자들을 통해서 ‘6월의 스승’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교육삼락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삼락회가 하는 게 평생교육·평생학습·평생봉사예요. 저걸 이제 실천하려고, 지금 우리 자체에서 만든 명심보감이라는 게 있어. 어린이들한테 효행사상이나 충효사상을 가르치는 책이에요. 제가 그걸 지금 학교에서 무료로 강의하고 있어요. 인성교육진흥법 같은 걸 보면,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교육부가 얘기할 정도가 됐으니까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또 매주 수요일 되면 교직자들 몸살림 운동이라고 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장애인센터에서 요청이 오면 가서 돌봐주는 것도 하고, 시간 나면 등산도 하고. 그렇게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 근무 이력을 보니 정읍 지역의 학교에서만 근무하셨는데, 원래 정읍 출신이십니까?
“맞아요, 41년간 정읍에서만 교육생활을 했어요. 제가 다닌 학교가 정읍 관내, 그 중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오지학교, 벽지학교로만 거의 돌았어요. 제가 원래 정읍 출신이에요. 고향만 부안이고, 초등학교는 정읍서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정읍서초는 제가 근무한 적도 있고.”
- 학생들 이야기를 조금 부탁드립니다. 박성우 시인도 선생님께서 가르치셨지요?
“제가 가르친 애들은 제가 거의 다 기억해요. 40년을 일했어도……. 박성우 어린이는 1983년도에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30여년 됐죠. 능교초등학교였는데, 당시 능교초가 정읍 관내에서는 제일 오지였어요. 어린이들이 집에 거적을 들고 들어갈 정도였고, 방은 도배도 안 돼 있고, 짚으로 만든 방석을 깔고 자고 그랬어요. 그런 어린이들을 6학년 때 맡았죠. 당시만 해도 일기장으로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주고 그랬어요. 그 중 박성우란 어린이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참 잘 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일기장에 ‘좋은 글을 써봐라’고 했어요.”
- 그럼 학생들과 자주 연락도 하고 그러시나요?
“6학년 아이들 가운데 반창회라고 해서 저를 중심으로 모임을 갖는 게 몇 개 있어요. 제자들이 40대 후반, 50세 가까이 되는데 찾아오고 연락하고 모이고 그래요. 밴드, 인터넷 카페도 하고 그렇죠.”
- 교육부 자료를 보면 ‘열정과 헌신으로 지도하셨다’고 나와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그건 너무 과찬이고, 뭐 될 만큼 활동한 바도 없어요. 다만 교직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것은, 애들하고 한 몸이 돼서 활동했다는 것 정도. 어린이들한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노력을 했어요. 예를 들면, 토요일 날 근무 끝나고 애들하고 라면을 끓여먹든 밥을 먹든 해서 제 차에 태우고 산과 들을 하루에 5시간씩 돌아다녔어요. 소년소녀가장도 있고 다문화 어린이도 있고 그랬어요. 주로 정읍 관내 수영장, 야영장, 바다, 산……. 내장산은 말할 것도 없고, 선운, 강천, 곰소, 부안…하여간 어린이들과 많이 돌았어요. 그리고 또 퇴직 10여년 전에는 정남초등학교라고, 거기서 교무부장으로 있었어요. 교장까지 승진하지도 않고 저처럼 교무만 10년 이상 한 사람 초등에선 없을 거요.(웃음) 하여간 거기서 발명교육을 해서 정읍 대표, 전북 대표로 발명경진대회에 나갔어요. 2001년도에는 학교 단체상까지 받았고.”
- 교육부 자료를 보면 학생을 차별하지 않고 자존감을 많이 실어주셨다, 관심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셨다 이런 내용이 있던데요.
“그런 것들은 상대적이에요. 제가 그렇게 했다기보다도 제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저도 중학교 때까지 고학했어요. 신문배달도 하고, 가정교사도 하고 그랬어요. 우선 그런 애들부터 챙겨줘요. 제가 어렵게 생활을 했고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서 더 신경이 쓰였어요.”
- 선생님께서 갖고 계신 교육 철학이 있다면?
“저 같은 경우는 교육 철학이 언제나 ‘사랑과 꿈’이에요. 애들한테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는 것하고, 애들한테 어떤 쪽으로 갈 수 있고 어떻게 훌륭하게 될 수 있는가를 길잡이 해주는 것, 이걸 교육 철학으로 삼고 한 40년 했어요. 이렇게 맡다 보면 이 어린이는 글을 잘 쓴다든가 이 어린이는 운동을 잘 한다든가, 이런 걸 파악해서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거죠.”
- 선생님께서는 현재 한국 교육, 전북 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금 안타까운 것이, 지금은 교육의 부재 상태예요. 교육계가 불신 받고 있고, 선생님들이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 제대로 안 갖춰져 있는 상탭니다. 체벌 문제에서도 불거졌듯, 사제 간의 불신이 형성돼 있는 게 안타깝죠. 또 40여년 있는 동안에 느낀 것이라면, 우리 나라 교육이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 무슨 얘기냐면, 초등학교 땐 충분히 놀고 뛰고 기본교육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가면서 순서대로 학문도 쌓고 전문소양도 쌓아서 목표하는 길로 가야 되는데, 우리 나라는 반대여. 초등학교에서부터 공부에 찌들어서, 인생은 뒷전이고, 그러다가 대학교 가면 취업공부만 하잖아요. 그런데 뭔 학문이 깊이가 있게 길러지겠어요. 그런 것들이 안타까워요.”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람직한 교육의 미래는 어떤 것입니까?
“교육의 미래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초등학교는 기본교육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예절이나 인성이라든가. 그 기반 위에서 차츰차츰 전문적인 교육활동이 대학·대학원까지 가면서 이어져야 한다고 봐요.”
● [이현수 선생은] 정읍서만 41년 '참스승 외길' · 박성우 시인 "행복한 삶 배워"
1949년 1월에 태어난 이 씨는, 출신지는 부안이지만 줄곧 정읍에서만 지냈다.
1969년부터 2011년 2월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41년 동안 정읍에 있는 두승초, 대흥초, 정읍서초, 능교초, 이평서초, 동신초, 정남초, 보성초 등을 돌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박성우 시인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선생님을 통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고, 박진우 씨는 “당시 선생님들은 대체로 엄하셨는데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학생을 대하는 분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또 한민오 씨는 “선생님은 늘 학생들과 같이하시며 모두에게 공평한 시선과 큰 관심으로 학생들 하나하나의 특성을 발견해주셨다”고 말했다.
이달의 스승 선정위원회와 교육부는 “학교 현장에서 오랜 기간 묵묵히 교육에 임하고, 제자들에게 존경 받는 퇴직 선생님의 미담 사례를 매월 발굴해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