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동네북 돼서야!

▲ 엄철호 익산본부장
지난 19일 익산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경철 익산시장이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및 모욕 등 형사 고소 고발 11건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는 그간의 조사결과 통보였다. 같은 혐의로 무려 17건에 달하는 고소 고발을 당했던 동료 기자 역시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겼다고 덧붙였다.

 

‘불기소’란 사건이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을 때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법률적 용어다.

 

다시 말해, 박 시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이번에 제기한 수십 건의 고소 고발은 별다른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경찰은 우리 사회의 정직한 감시자이자 중심축인 언론이 진실과 정의에 결코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아직은 검찰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어 유·무죄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지만 기자생활 30여 년 만에 처음 겪는 이번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언론의 기능과 역할, 기자의 사명감, 선배들의 충고 등 이런저런 온갖 잡동사니 생각이 밀려왔다.

 

사실 기자가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랬다. 선배들은 경찰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우라고 했다. 대개 경찰서를 첫 출입처로 배정받는 20대의 새파란 나이 신입기자들에게 무릇 기자란 자신이 속한 언론사를 대표하여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이므로 경찰서장은 물론 어떤 권력자 앞에서도 절대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기사를 써야 한다는 선배들 나름의 교육방식이었다.

 

기자란 직업이 그리 넉넉히 먹고살기는 어렵지만, 기개나 자존심 만큼은 그 어떤 권력자 못지 않아야 한다는 게 선배들의 일관된 충고였다.

 

그런 후배기자가 어느덧 강산이 세번이나 변해 고참(?)기자가 되었다.

 

요즘의 그는 명색이 선배랍시고 후배기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얘기가 있다. 권력 감시와 비판 등 언론 본연의 기능은 일단 각설하고,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고.

 

기자가 외압이 무서워 기사 대신 주둥이만 나불거리고, 권력의 ‘시다바리’가 되어 알랑거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기자가 병든 사회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의 선배들이 들려준 문을 박차고 들어가 다리 꼬며 담배 피우기 등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몰지각한 행동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임을 잊지 않고 경고한다.

 

그런 선배기자가 이번에 피고소인 신분으로 경찰서 문지방이 닳도록 넘나들며 하루 대여섯 시간씩 조사를 받으면서 새삼 느낀 게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언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갖는다. 언론의 표현 자유가 맨 앞이다. 권력의 견제와 비판, 의혹 제기는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로 그 중심에 언론이 있고, 국민들의 눈과 귀가 바로 언론이다. 그게 없다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언론과 기자가 동네북이 되고서야 온전한 기사를 쓸 수 있겠는가. 당연히 고발 기능은 약화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 몫이 될 것이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故 마틴 루터킹 목사의 말이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이참에 후배기자들에게 묻는다.

 

“살아 있느냐”고, 그럼 “무엇이라 답할 텐가”.

 

“형편없는 쉬레기(쓰레기의 점잖은 표현) 기자”라는 질책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