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허진규

일진홀딩스를 중심으로 10여개 계열사로 된 일진그룹은 전북에 친숙한 기업 집단이다. JTV전주방송과 이음매 없는 정밀특수강관 생산업체인 임실 소재 일진제강,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들어가는 연성회로기판용 특수부품을 생산하는 익산 소재 일진머티리얼즈의 모그룹이다.

 

창업주 허진규 회장은 부안군 보안면이 고향이다. 1968년 서울에서 종업원 2명으로 출발, 제조업으로 수조원 규모 중진그룹을 일군 입지전적 인물이다. 1969년 변전용 금구류를 시작으로 사업을 확장시킨 허 회장은 항상 기술력으로 승부 했다. 그래서 일진에는 국내 최초가 많다. 동복강선, 화섬용 보빈(실이나 전선을 감는 틀), 폼 스킨 케이블(Foam Skin cable, 플래스틱을 절연체로 사용한 고품질 케이블),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 인쇄회로기판(PCB)용 전해동박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터치스크린패널을 만드는 일진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일진LED, 일진머티리얼즈, 일진제강 등은 일진의 미래다. 최근 매출 4조원 규모의 일진은 조만간 1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의 고향 부안에서 일진을 바라보자면 아쉬움도 있다. 부안 투자 때문이다. 물론 전주와 익산, 임실 투자가 있고, 기업 투자는 물류와 인력 등을 냉정히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런 사례가 있다. 삼양사 김연수 회장은 1966년 폴리에스텔 섬유공장을 울산에 짓기로 했다. 그 때 전주 팔복동 산단을 건설하던 전북도지사 등이 김 회장을 찾아 고향 투자를 호소했다. 모든 입지 조건에서 전주는 울산에 턱없이 밀렸다. 그러나 전주를 둘러본 김 회장은 폴리에스텔 전주공장(현 휴비스) 투자를 결정하는 중역회의에서 고뇌에 찬 심정을 밝힌다.

 

“물론 나 역시 울산에 비해 전주의 입지 조건이 여러모로 불리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오. 그러나 기업 경영에 몸담은 이래 (중략) 기업의 사명은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데 있고, 따라서 언제나 기업을 만들어 사회에 바친다는 정신으로 일해 왔음을 유념해 주기 바라오. 또 한 가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한 내 고장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을 때,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거듭 듣게 되었을 때 차마 나로서는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는 점을 참작해서 마지막 결정을 내려주기 바랄 뿐이오.” 고향에서 문을 두드리니 삼양의 문이 기적처럼 열렸다. 인구 6만선이 무너진 부안은 일진의 문을 두드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