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길거리로 스트리트 최면을 하러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길 전주한옥마을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장소이기 때문에 새롭거나 신기한 체험에도 쉽게 참여할 것 같았다.
되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여름방학 시즌이었고 한옥마을은 전국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우글우글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그룹을 향해 접근하려 하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내게 찾아온 것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사람들과의 거리는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도 처진 것처럼 나는 그 몇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직 딱히 거절이나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마치 내 몸이 아닌 양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짝 말라 와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입술을 핥았다. 준비한 멘트를 이야기하려고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목구멍 밖으로 간신히 기어 나오는 정도였다.
외국 최면가들이 자신의 최면 강좌에서 이야기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데 느끼는 두려움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새로운 체험을 찾아 핸드폰을 검색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눈에 띄었지만 마음속으로 나는 한 바퀴만 돌고 와서 저 사람들에게 스트리트 최면을 시도해보자, 라는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끝도 없이 한옥마을을 걷기 시작했다.
돌고 오면 당연히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면서 한옥마을을 걷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트리트 최면을 하려 나와 장장 6시간 가까이 한옥마을을 걷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주위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다음에 나와 다시 도전하자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음속에서는 오늘 아무 말도 못 건 것에 대한 변명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갑자기 이대로 집에 가면 영영 다시는 거리에서 내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상황에서도 마음속으로 많은 변명들을 만들었다는 게 떠올랐다.
떨리는 심장을 참으며 눈앞에 보이는 커플을 향해 여러 가지 토를 달지 않고 앞에 다가갔다.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커플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준비해온 루틴대로 최면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실패를 했지만 마음속에서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커플들은 굉장히 재밌게 체험을 받아들였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에도 물론 많이 주저하긴 했지만 나는 계속 한옥마을과 전주거리에서 스트리트 최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어느덧 유튜브에서 외국 최면가들이 보여주었던 것을 나 스스로도 사람들에게 체험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워 말고 첫발 내딛어야
되고 싶은 모습이 생겼을 때 나는 새로운 테크닉을 익히거나 도구를 사면 단 하루 아침에, 아니면 일주일 만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게 된 지금 볼 때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어떤 새로운 외국 최면가의 테크닉도 아니고 도구들도 아닌 그 때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변명에 넘어가지 않고 옮긴 몇 걸음 덕분인 것 같다. 사실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지만 되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내딛는 몇 걸음은 옆에서 보는 것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 첫 걸음을 내딛으라고 말이다.
△이태용 씨는 전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전주한옥마을 등에서 즉석 최면 공연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