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부머

가난을 숙명으로 여기며 국가 경제발전 초석 마련 / 인재은행 체계적 운영을

▲ 서경석 청어람출판사 대표

베이비 부머(Baby Boomer)는 한국전쟁 직후 가족계획정책이 실시된 1955년부터 1963년에 걸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1980년 전후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과 함께 은퇴의 전선에 섰다. 대기업 부장급 이상 고급인력만 해도 한해 평균 4000여 명이 퇴직을 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웅호걸들도 결국 세월의 덫에 걸려 명멸해 갔으니 새로울 건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요, 살아있는 것은 시간과 함께 결국 소멸되어 간다는 이치를 확인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건만 가슴 한구석 무상함이 차오르는 건 필자가 같은 세대를 살아온 탓일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을 바라보는 2015년 지금,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아스라한 벼랑길을 곡예 해온 느낌이다. 1960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79불에 불과했다. 100억불 수출을 달성했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때가 1977년도다.

 

지금은 수출 규모가 6000억 달러가 넘고, 수입을 포함한 무역규모는 1조 달러가 넘는다. 온 국민이 ‘잘살아 보세’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열심히 뛴 결과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헌신은 눈물겹다. 그들은 질주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이라는 기관차의 부속품은 물론 철로가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로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다. 생존을 유일의 가치로 여기며 열심히 일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하나 되어 뛰었다. 베이비 부머들은 스스로에게 훈장을 수여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제 몫을 해냈고 국가발전에 기여를 했다. 부모와 자식들에게도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한 마지막 세대일수도 있다.

 

그런데도 은퇴를 하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 부머들은 외롭다. 살모사가 새끼를 낳고 나면 자신의 몸을 먹이로 던지듯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앗긴 탓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어이없게도 은퇴자금으로 받은 돈을 자식 혼사에 몽땅 바쳐야만 하는 사회 풍조는 차라리 희극이다.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어 가며 키워낸 자식들이 자리를 못 잡는 사회 시스템에 절망이 엄습한 탓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산업전선에서 몸소 뛰었던 시간보다 죽음과 마주한 채 연명해 가야만 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이 어쩌면 제일 큰 외로움의 요인이라 하겠다.

 

인간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사회적 기능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 여행의 유희도 일주일이고, 빈둥빈둥 노는 즐거움도 한두 달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과 마주한 채 수십 년을 잉여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차라리 고통 아니겠는가.

 

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된 베이비 부머 세대를 돌아보라. 책임 있는 정부 관계자들은 그들의 헌신을 외면하지 마라. 그들에겐 경험이라는 자산이 있다. 질곡의 역사를 관통하며 체득한 지혜가 있다.

 

인재은행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면 어떠한가. 중국 등에서는 이미 우리의 유수 은퇴자들의 경험과 재주를 헌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해외 유출은 산업비밀도 함께 넘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허약한 중소기업에 이식하는 작업을 서두름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서경석 대표는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이사,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 월진회 부회장, 재경진안군민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