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마을

인천시 동구 만석동에는 한국 현대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동네가 있다. 괭이부리마을이다. 괭이부리마을은 낯설지만 그 이름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아동문학가 김중미가 오래전에 펴낸 창작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 덕분이다. 2000년 창작과 비평사가 주최한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서 창작부문 대상을 받아 책으로 만들어진 <괭이부리말의 아이들> 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지만 당시 매체의 주목을 받으면서 수많은 어른들을 독자로 끌어들였다. 2002년에는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로 꼽혔으며 그 이후에도 청소년 필독서로 자리 잡아 꾸준히 읽히고 있다.

 

괭이부리마을은 만석동 달동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애초 이 마을은 인천이 개항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은 6.25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들어와 모여 살면서부터다. 그 뒤로도 가난한 사람들이 들고나면서 인천의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동화는 이 달동네에서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 동네에 살면서 ‘기찻길 옆 작은 학교’라는 공부방을 꾸려온 작가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허름한 판잣집 쪽방에 삶을 뉘인 부모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지금도 괭이부리마을에는 360여 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다. 이중 절반가량인 300여명 230가구 정도가 쪽방 주민이다. 도시마다 재개발 열풍이 불어 수많은 달동네를 변화시킨 환경 속에서 괭이부리마을은 도시 안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어려운 섬과 같은 존재다. 가난을 상징하는 ‘쪽방촌 ‘은 사실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죄스럽다. 가난한 삶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온 주민들을 마주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최근 괭이부리마을이 반갑지 않은 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곳에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인천 동구청의 계획이 공개되면서다. ‘옛 생활 모습에 대한 자녀의 학습 교육 효과와 유년 시절에 대한 부모들의 추억 체험’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란다. 옛 생활 체험관의 1일 숙박 체험료는 1만원.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고단한 쪽방촌 주민들의 민낯까지도 1만원에 담겨질 뻔했다. 무서운 세상이다.

 

다행히 의회의 부결로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가난까지 상품화’하려했던 행정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다. 슬픈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