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사지와 인사뇌물

중국 후한시대에 양진(楊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포청천보다도 더 ‘진정한 양심인’으로 꼽는 인물이다. 도지사 급인 형주(荊州)의 자사(刺史)로 양진이 부임하던 중, 관내 고을 관리인 왕밀(王密)이 밤중에 찾아왔다. 둘은 익히 아는 사이인 데다 왕밀은 양진의 추천으로 고을 수장을 맡고 있던 터였다. 지난 보살핌도 있고 해서 성의라면서 왕밀이 황금 열근을 내놓았다. “밤중이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재차 권유하자 양진이 일갈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가?”(天知 地知 我知 汝知, 何謂無知)” 이른바 양진의 ‘사지론’(四知論)이고, ‘양진사지’(楊震四知)라는 사자성어가 나온 배경이다.

 

승진인사와 관련한 거액 뇌물설이 관가에 회자되고 있다. 어떤 기초자치단체의 6급 공무원이 사무관 승진 대가로 5000만원을 주었더니 한 장 채워 갖고 오라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한 장은 1억원이다. 이 공무원은 승진을 포기했다. 뇌물은 비서실에서 요구했다. 하지만 단체장과 관련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에, 부하 직원한테 승진 장사를 하다니 이걸 인간이라고 해야 할는지 원∼.

 

공직사회의 비리가 잇따르고 있다. 순창군 비서실장이 2013년 11월 승진 대가로 공무원한테 3000만원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태양광사업 허가조건으로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 황숙주 순창군수 부인은 군청 기간제 공무원 채용 대가로 지인한테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있다. 익산시청 계장, 전북도청 과장, 전 부안군 부군수 등 인사나 사업비리로 자살한 공무원도 여럿이다. 자살하지 않았다면 윗선의 여러명이 다쳤을 게 뻔하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리도 부지기 수일 것이다. 아무리 당사자 간의 얘기라지만 비밀이 끝까지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다.

 

공직사회에선 인사뇌물을 ‘안전빵’으로 친다. 돈 주고 받은 모두를 처벌하는 양벌규정에다, 상사의 인사권 때문이다. 돈 받은 사람만 처벌하도록 법을 고치면 인사뇌물은 상당히 없어질 것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취임 당시 단돈 100원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교육청의 인사뇌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비리가 계속 터지고 있는 데도 단체장들은 왜 이런 선언을 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