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가 계획을 짜는 데서 오는 피로감에 대해 다룬 기사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휴가기간에 계획을 짜서 여행을 가거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세밀하게 일정을 짜고 그 일정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휴가 계획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휴가 계획을 짜는 노하우에 대한 기사들도 올라오는 걸 보면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낯선 곳 천천히 걸으면 색다른 느낌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주변의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나 전주로 여행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너무 정형화된 루트대로 여행을 떠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전주에 온다면 한옥마을을 구경하고 남부시장에 갔다 청년 몰을 구경하고 막걸리 골목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혹은 전국여행이라면 아침에 전주에 와서 저녁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 과 같이 여행 계획에 커다란 홈이 파여 있어 그 길대로 떠나는 것 같다.
물론 여행에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거나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떠나고 혹은 또 다른 테마에 맞춰 여행을 떠나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 그 자신에게 굉장히 깊은 의미를 선물할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런 모든 것들을 던져 버리고 그냥 아무 이유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무작정 모르는 곳으로 떠나 단 하루나 이틀이라도 그 지역을 발 닿는 데로 거닐면서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 않을까?
예전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광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긴 적이 있었다. 딱히 광주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 가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가보고 싶어 아무 곳이나 뽑은 것이 바로 광주였다.
약 1시간 반 정도 지나 터미널에서 내려 발길 닿는 데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를 구경하고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천천히 그렇게 걷다보니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게 되었고 광주라는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사는 장소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그리고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지나는 것도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 동안은 다른 지역을 놀러갈 때 관광객으로써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지만 그땐 마치 내가 이곳에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순수한 얼굴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거의 도보로만 다녀서 끝나고 전주로 돌아올 때 굉장히 다리가 아팠지만, 보람차게 시간을 보냈어! 무언가를 얻은 여행이었어! 내 자신을 찾은 느낌이야! 이런 것들과는 관련이 없는, 이유 없는 즐거움을 얻었다.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는 휴가를
그 뒤로는 소소하게 내가 사는 지역인 전주 여기저기를 두 발로 걸으면서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좁은 골목길들, 처음가보는 길, 이런 소소한 곳 속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가게나 카페, 그리고 그 지역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고등학교 이후 계속 지내고 있는 전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크고 더 많은 것들을 감추고 있는 보물 상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를 보내는 것을 권한다. 이미 많은 의미는 일상에서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