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나인구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멀리 가려면 사막을 지나고 짐승을 피해야 하는데, 길동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먼 인생의 길에도 어려움이 어디 사막과 짐승뿐이랴.

 

우리 동네에 80세가 넘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매일 동네 여기저기 쓰레기통을 뒤지며 폐휴지나 재활용 고물들을 모은다. 허리가 굽어 몸도 잘 가누지 못하시는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자 동행한 적이 있다. 아들이 모두 잘살지만 의탁하지 않으려는 성미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폐휴지를 주워 모은단다. 좁은 골목에 창고 아닌 창고에 많은 폐휴지가 쌓여있었다. “이걸 팔아서 어디에 쓰려고 해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건 알아서 뭣 헐려고 그려.” 하고 별것을 다 묻는다는 투다. 아드님이 용돈도 준다면서 왜 이런 고생을 하시느냐고 묻자, 나는 돈이 필요 없다면서, 할머니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사연을 듣는 나는 부끄럽고, 내가 살아온 길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혼자서 두 아들을 공부시켜 서울에서 훌륭한 자리에 있게 만들고 매일 모으는 폐휴지를 팔아 저축한 돈 십여만 원을 노인 요양 복지병원에 있는 환우들에게 보낸단다. 한 달에 많아야 십여만 원 정도의 돈이 별것 아니어서 부지런히 일해야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것이라며 누구에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할머니는 80년이 넘는 먼 길을 누구와 동행했을까? 멀고 험한 길을 누구를 위해서 걸어왔을까? 어린 자녀들을 위해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한국동란 때 남편을 여의고 할머니는 동행한 짝도 없이 자식을 위해 아니 자식과 동행의 길을 이곳 80이 넘는 고개까지 멀리 왔던 것이다. 과연 혼자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함께 가는 사람이 있기에 멀리 갈 수 있다. 소찬이라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가족과의 밥상이 즐겁고 맛있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젊은 날엔 가족과 지금은 노인복지병원의 환우들과 동행의 삶을 걸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멀리 걸어왔고 또 멀리 가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멀리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면 당신은 누가 떠오르는가?

 

떠오르는 사람이 빨리 생각나지 않는다는 건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혼자 걸어온 삶이 너무 많았다는 증거다. 너무 많은 사람이 생각난다면 그 사람들과의 마음을 나누며 느리더라도 함께 걸어온 삶이 보람과 희망으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여겨도 된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먼 길을 가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슬기, 행복, 즐거움 등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렇게 멀기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려면 마음씨 고운 동행인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누구도 그 거리를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늘 고마워해야 한다. 내 마음과 몸이 그들에게 깊이 의지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당신은 누구와 동행하는가? 성인의 그늘이 아니라도, 조그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즐거움으로 포장된 동행의 순례 길을 준비하길 바란다. 설령 외롭거나, 홀로 산다고 혼자 가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길은 내일의 밝고 맑은 축복의 문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수필가 나인구 씨는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했다. 〈대한문학〉에 시·수필로 등단했다. 저서로 수필집 〈그런 돌이 되고싶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