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의 비애

완주 구이에서 20년 넘게 시설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가는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예년 같으면 kg당 1만원선을 받았지만 지난해부터 포도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다 올들어서는 주문마저 크게 줄어들어 울상이다. 포도 하우스 시설을 늘리면서 1억원이 넘는 투자비용이 들어갔는데 포도농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손해를 보면서 계속 해야할 것인지 고심이 크다. 도내 복숭아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 체리·망고·자몽 같은 봄철 과일 수입이 늘면서 복숭아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데다 판매마저 부진해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고민은 비단 포도·복숭아 재배농가 뿐만 아니라 매실 감 자두 배 밤 체리 딸기 수박 참외 멜론 등 모든 과일 재배농가들이 떠안고 있는 공통적 과제다.

 

빗장이 풀린 해외 농산물이 물밀 듯 수입되면서 국내 과수농가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의 경우 2004년 한·칠레 FTA 체결이후 칠레산 포도에 이어 지난해부터 미국산과 페루산까지 국내시장 장악에 나서 포도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칠레산 포도 관세가 완전히 철폐됐고 내년부터는 미국·페루산마저 무관세로 수입된다. 우리 포도 농가의 미래가 암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15’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포도재배 면적은 지난 2000년 2만9000ha에서 2014년 1만6000ha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특히 어린 묘목 재배면적은 6000㏊에서 2300㏊로 급감하면서 포도 농가들이 재배 의지를 상실한 것을 반증했다. 봄 여름 과일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는 오렌지와 바나나 수입이 크게 늘면서 사과 배 등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동안 FTA 파고에서 비켜서있던 채소농가도 중국·베트남과의 FTA 체결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내 시장의 절반을 잠식당한 고추 뿐만 아니라 마늘·양파 등이 저가 공세를 펼 경우 양념류 시장 역시 초토화될 것이 뻔하다.

 

정부에선 올해 FTA 피해보전 직불금 신청 대상으로 대두와 감자 고구마 체리 멜론 노지·시설포도 닭고기 밤 등 9개 품목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체리와 노지·시설포도 닭고기 밤 등 5개 품목은 폐업 지원금 대상이다. 애초 지난 8월말까지 마감했다가 이달 18일까지 연장 접수를 받고 있다. 수입 과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포도 농가는 일부 시·군에선 30% 가까이 폐업 지원 신청을 했다.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넓히기 위해 추진한 FTA가 우리 농민들에게는 생존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