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겨운 여름은 언제 끝나지? 영화라면 벌써 끝났을 텐데. 페이드아웃하면서 폭풍 불고, 정말 시원하게 끝날 텐데 말이야.” 영화 <시네마 천국> 에서 영사기를 돌리던 주인공 ‘살바토레’가 하는 푸념이다. 가을이 왔음에도 찌는 듯한 더위는 물러나지 않고 비좁은 영사실에서 쉴 새 없이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그의 처지는 꿉꿉함 그 자체다. 그가 말하는 더위에 공감이 간다. 딴은 우리나라도 입추, 처서 다 지나고 이제 가을이다 싶을 즈음에 등을 따끔따끔하게 하고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 않던가. 선인들은 오곡백과를 잘 여물게 하는 고마운 햇볕이라고 했다. 시네마>
러시아에서는 이 뜨거운 기간(여름 끝 무렵에서 초가을로 들어서는 2주간 정도)을 ‘바비레따’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지나간 여름보다 더 정열적이고 아름답다며 제5의 계절이라 부르기도 하고. 한편 이 말은 중년여성을 칭하기도 한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여성이라는 뜻으로. 푹푹 찌는 여름 잘 견디고 더욱 농익은 모습으로 리뉴얼 하였으니 가히 잘 익은 과일에 비견할 수 있으리라.
바로 이 뜨거움을 말하는 영화가 있다. <인디안 썸머> 라는 영화다. 제목은 ‘인디언 서머’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전 따르면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란 북아메리카에서 한가을부터 늦가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기후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라고 되어있다. 유럽에서는 이를 ‘늙은 아낙네의 여름’이라고 한다니 느낌의 차이는 커 보인다. 인디안>
영화 주인공 ‘신영’(이미연 분)은 자신의 삶이 한 번도 뜨거운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선망하는 의사의 부인이 되었지만, 남편은 신영에 대하여 항상 냉소적이다. 남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다. 어느 날 욕실에서 남편이 사망한다. 둘이 몸싸움을 하다가 남편의 손에 들려있던 칼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
살인 혐의로 입건된 신영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찾는 사람도 없고, 말 거는 사람도 없는 감방에서 신영은 서서히 잊혀간다. 항소심. 신영은 변호를 거부한다.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을 무렵,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름은 ‘서준하’(박신양 분). 국선변호인이다.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이 사건을 두고 서준하는 외국 유학까지 포기하며 변호에 진력한다. “사서 고생 하지 마세요.” 그의 사무장이 하는 말이다. 준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치밀하게 변론자료를 준비한다.
“자꾸 나 때문에 애쓰지 마요. 살고 싶어지니까.” 겨우 입을 연 신영의 입장은 단호하다. 집에 갇혀 지내다 폐소공포증까지 얻은 그녀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버스 터미널이고 정류장이다. “표 주세요. 정류장에 내려서 갈 곳 향해 뛰고 싶어요.” 그녀는 그렇게 길들여졌다. “아무 생각 없이 죽고 싶어.” 신영을 구하기 위해 준하는 휴대전화기 배터리까지 빼 던진다.
차츰 마음의 문을 여는 신영.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 있대요. 거기서 자기가 살았던 동안의 기억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고민했어요. 가져갈 기억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날, 신영은 원심대로 확정판결을 받는다. 서러워하는 이 하나 없는 길 위로 준하의 낮고 긴 목소리가 깔린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끝에 찾아오는 여름처럼 뜨거운 날/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 모두가 기억하지는 못하는 시간/ 다만 겨울 앞에서 다시 한 번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 주기를 소망하는 사람만이/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 인디언 서머를 기억 한다/내가 그날을 기억하는 것처럼/기억한다는 건/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바비레따와 인디언 서머의 강렬한 볕은 푹푹 찌는 여름을 잘 버텨온 사람의 것 아닐까? 시네마 천국의 살바토레는 그 지겨웠던 여름의 기억을 부둥켜안고 노력하여 로마에서 영화감독으로 대성한다.
영화에서 준하는 항상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사법시험 합격하자 아버지가 약한 사람 도우러 열심히 뛰어다니라며 사주셨단다. 이후 운동화는 그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의 삶은 운동화로 인해 항상 뜨겁다. 신영의 정류장과 준하의 운동화가 묘한 대비를 이루며 클로즈업된다. 이들의 삶과 여름은 또 하나의 은유로 교차하며 다가오고.
대장이 병사한테 물었어요. “여기 풍차가 있었던 것 기억나나? 네, 기억납니다. 풍차가 사라졌는데, 바람은 여전히 부는구나.” 시네마 천국 살바토레의 스승 ‘알프레도’가 한 말 속에 지나간 여름이 기다랗게 걸려 있다. 여름이 없는 인생, 여름을 기다리는 인생…….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라는 연극이 있다. 권태, 우울, 허무감 등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관객들과 배우가 춤판을 벌인다. 춤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정열적이며 꿈을 지닌 존재인가를 알게 해 준다는 것이 연극의 목적이다. 영화와 연극과 춤의 역설(逆說)이 마음을 초여름으로 데리고 간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이승수 힐링시네마’는 이번주부터 격주 목요일자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