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⑥ 미당시문학관·생가 관리, 이대로 좋은가

창고안 쓰레기 더미 수북, 벽 곳곳엔 낙서 '덕지덕지'…'詩의 정부' 명성 무색

▲ 지난 달 21일 방문한 질마재 마을의 미당생가. 벽에 낙서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미당의 고향인 고창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무게와 함께 무심한 인정에 대한 탄식을 불러일으킬 법하다. 질마재 마을에 있는 생가는 아무런 생활도구조차 없이 방치돼 있고 문학관 역시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다. 시설보수와 콘텐츠 마련이 시급해 보이지만, 미당의 과오인 친일과 독재옹호 때문에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미당의 문학적 업적과 과오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하지만 미당문학관과 생가가 있는 곳은 선운산과 인접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곳이며, 그의 문학적 모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으로서도 좋은 문학적 자산이 될 수 있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시대적 관점에 통용될 수 있는 차원에서 그 방안을 모색한다.

 

△부끄러운 흔적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그 곳에는 생가와 시 문학관 등 미당의 생애와 시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여러 흔적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시의 정부’, ‘국민시인’이란 명성이 무색케 할 만큼 초라하다.

 

지난달 21일에 기자가 들렀던 미당생가. 생가의 담장은 낮게 둘러쳐져있고, 초가집 한 채와 창고가 덩그러니 서 있다. 미당이 살던 때의 모습을 재현한 초가지붕,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상가수의 소리’) ‘라고 일컫던 우물 등 ‘미당의 원초적인 삶의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집 벽 곳곳에 있는 수많은 낙서자국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연인끼리 사랑을 과시한 문구나 방명록 등 다소 ‘민망한’ 흔적이 여러 남아있었다. 또 생가의 방문은 거의 잠겨있고, 유일하게 열리는 창고는 안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었다.

 

서정태 옹은 “현재 고창군에서는 잡초를 제거하거나 문에 창호지가 찢어지면 바르는 정도의 보수만 한다” 며 “관리를 철저히 안한다”고 말했다. 서 옹은 이어 “원래 집 안에 형님께서 생전에 쓰던 가재도구가 있었는데 모두 없어졌다” 고 덧붙였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 미당이 1970년대부터 2000년 12월 24일 타계할때까지 살았다는 봉산산방(蓬蒜山房).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해 있다.

미당 생가에 인접한 개울을 건너면 미당 시 문학관이 나온다. 문학관은 폐교된 봉암초등학교 선운분교 분지를 활용해서 만들었다. 지난 2013까지 수억 원을 들여 시설을 보강하고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당의 유품과 친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어, 미당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미당 시문학관 관리 담당자는 “문인과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다” 며 “하루에 50여명 정도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미당 문학을 설명할 전문적인 학예연구사가 없다. 미당의 유품관, 작품전시관 등으로 구획을 나눈 전시실에 대한 지적도 따른다. 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은 “유품이 항목별로 나열만 되어있을 뿐 테마를 담은 전시가 없다” 고 꼬집었다.

 

△주민쉼터와 학생 교육기능만 하는 봉산산방(蓬蒜山房)= 고창에 이어 지난 5일 기자가 취재하러 갔던 봉산산방(蓬蒜山房). 미당이 1970년부터 2000년 12월 24일 타계할 때까지 30년간 살던 집이다. 곰이 쑥(蓬)과 마늘(蒜)을 먹으면서 웅녀가 됐다는 단군신화의 내용을 갖고 미당이 직접 지었고, 한국 신화의 원형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해 있다. 모두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에는 미당이 실측하여 만든 건축설계도와 생전에 즐겨 입었던 의복과 소품 등이, 2층에는 자신의 작품을 친필로 쓴 서예와 집필도구, 저서, 여권 등의 유품이 진열돼 있었다.

 

관악구청이 제시한 ‘미당 서정주의 집’ 설명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 전시돼 있는 미당의 주요 유품과 저서들은 고창 시문학관에 소장되어 있는 전시품 중 일부를 복제한 것들과, 동국대학교에서 소장품을 기증받은 것이다. 미당의 문학적 업적을 외면할 수 없다는 취지하에 지난 2011년 서울시가 예산을 들여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현재는 관악구의 예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봤을 때 미당 생가에 비해 관리와 보존은 잘 돼 있었다. 이곳에서 관리를 담당하는 공익근무요원 김성준 씨(22)는 “시설보수와 청소가 꾸준히 잘 이루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은 주로 학생들의 교육 용도나 주민 산책코스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김 씨는 “하루에 20명 정도 방문하는 데 주로 학생들이다” 며 “주로 학교 과제 때문에 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인 이모 씨(53·여)도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올 때 둘러보기만 한다” 며 “형식적인 관리보다 방문객에게 지식을 주는 ‘확실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관악구청에 자문을 하는 윤재웅 동국대 교수는 “봉산산방은 30년 동안 원형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 곳이라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며 “문화적 마인드를 되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고 말했다.

 

△“체계적인 관리”vs“자율적 관리”=미당의 생가와 시문학관 관리문제에 있어서도 그의 정치적 성향과 행보에 대한 평가가 개입된다. 그 결과 담당군청도 조심스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창군청 담당자는 “다음해에 미당 생가의 낙서자국을 지우는 등 일부 관리가 부실한 부분을 점진적으로 보수할 계획이다” 고 말했다. 문학관의 콘텐츠 정책에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관리중심으로만 운영하고 있어서 고려해볼만하지만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족단체의 반대 민원이 심해 미당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게 조심스럽다” 면서 “미당을 반대하는 측과 절충점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봉산산방을 관리하는 관악구청은 고창군청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극심한 민원이나 반대의견이 상대적으로 적어서다.

 

전문가들의 입장은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 지자체 단위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자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은 “미당 시 문학관은 미당 문학의 변천사를 시기별로 드러낼 수 있는 콘셉트로 전시공간을 구성하고, 전문적인 학예연구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미당 생가는 조경시설을 보완하고 잘 꾸민 벤치 등을 둬 관광마케팅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재웅 교수도 “미당 유품을 가지고 서울과 고창이 교환전시도 하고, 미당 문학을 소재로 문학관 앞에서 공연행사나 홍보를 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서정주가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의 친일행각이나 친 권력적인 행보의 면면을 살펴볼 때 민족 구성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며 “국가 재정이나 지자체 재정으로 ‘미당의 행적’을 관리하는 것은 반대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이어 “미당의 생가와 시문학관 관리는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보다 미당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강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