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백제여!

▲ 유성엽 국회의원

지난 7월초, 무더위에 찌든 우리 도민들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단비 같은 소식이 들렸다. 익산을 비롯한 부여, 공주의 백제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12번째 세계문화유산인 것이다.

 

익산 백제문화 세계유산으로

 

지금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다른 문화유산의 방문객 증가율과 기존 익산시 평균 관광객 증가율 등을 동시에 반영한 추정 수치로서 2020년까지 관광객 유치에 의한 전북지역 경제적 파급효과가 생산 3775억 원, 부가가치 1514억 원, 고용 9774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전라북도와 익산시는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하고 홍보 관광 인프라 등 4개 분야 38개 세부 사업을 발굴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에 대한 홍보에 초점을 맞춰 관광객 유치 전술을 구사하고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와 전주 한옥마을,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을 연계하는 새로운 관광지도도 구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화답일까. 지난달에는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백제시대 왕궁의 부엌터가 발견되었고, 백제시대 철제솥과 숫돌, 토기 등도 함께 발굴되었다. 부엌건물의 구조와 배치양상이 일본 고대궁궐의 건물과 유사하다는 주장도 잇따른다. 백제궁궐 축조형식이 일본에 전파되었을 개연성의 단서인 것이다. 참으로 흥분되고 행복한 미래가 그려진다.

 

그렇다면 지금 백제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백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하는 교과서 기술은 대략 다음과 같다. B.C 18년 주몽의 아들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여 백제를 건국했고, 3~4세기인 고이왕과 근초고왕 대에 비약적으로 발전, 전성기를 구가한 후 660년 의자왕 재위 시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과연 교과서 기술내용이 장구한 백제역사의 전부일까? 이러한 물음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학자나 전문가는 몇 명이나 될까. 필자는 우리가 연구하고 밝혀내야 할 ‘백제사’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먼저 백제의 멸망시기를 660년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물론 나·당 연합군에 패배한 것은 660년이 맞다. 하지만 664년 당나라는 압송했던 백제귀족들을 귀환시키고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으로 하여금 통치책임자로 하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다. 웅진도독부는 672년 신라의 공격으로 해체할 때까지 지속되었고, 이후 백제 유민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망명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892년 진훤에 의해 백제는 다시 부활했다. 936년 왕건에 의해 후삼국이 재통일 될 때까지 엄연히 백제는 존속했던 것이다. 군산대 곽장근 교수는 전주시 중노송동 인봉리 일대가 후백제 왕궁터임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기도 했다. 우리 생활 근거지 곳곳에 백제인의 숨결이 묻혀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운 역사 밝히는 노력 필요

 

또한 백제 도읍이 위례성에서 웅진성으로, 다시 사비성으로 옮긴 역사는 정설이다. 하지만 무왕비 사택왕후가 창건한 것으로 밝혀진 미륵사터가 있고, 궁궐의 건물터와 다수 유물이 출토되는 등 익산 왕궁리가 사비성 이후 백제의 새로운 도읍이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도 속속 제기되고 있기에 이를 정사로 승화시켜야 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백제의 역사를 올바로 밝히기 위한 학술활동, 그리고 새로 쓴 백제사를 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 등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