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이 발달한 전북에서 발레는 지금도 불모지와 다름 없다. 발레 전공자도 드물고, 발레 공연도 뜸하다. 이런 척박한 발레 여건에서 발레리나 손윤숙은 독보적이다. 20여년간 열악한 여건의 전북에서 발레단을 꾸려온 것이나 무대에 오를 때마다 항상 새로운 실험에 도전해온 것 모두 귀하고 값진 노력으로 받아들여진다. 발레에서 예순은 은퇴할 나이지만 만년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도 발레리나의 열정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10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가진 그의 회갑기념 공연은 그의 발레리나 인생을 결산하는,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손윤숙 발레단의 창작모던발레 ‘한송이 꽃, 바람에’를 주제로 한 이날 공연은 손 교수(전북대 무용과)가 전주에서 20년 동안 쌓아온 노력의 정수를 보여줬다.
이날 공연은 기존 고전발레 테크닉을 해체시켜 다양한 감성과 신비롭고 모던한 움직임으로 역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줬다.
먼저 프롤로그로 영상을 도입하여 바위틈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피어나는 한송이 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꽃의 내면에 있는 혼과 같은 생명의 씨앗이 바위 틈새로 피어나는 ‘한송이 꽃, 바람에’는 인생의 역경 속 험난한 길에서도 변함없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을 1년 내내 바위틈에서 핀 들꽃을 상징적으로 비유하고 있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지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숨 쉬고 녹아난 깨끗한 영성을 한편의 그림 이야기로 표현했다. 특히 작품의 이미지를 돕기 위한 영상과의 협력 작업의 시도는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송이 꽃’의 역할을 맡은 손 교수의 등장은 발레리나로서 살아 온 세월을 그대로 이야기 하는 같았다. 휴일 한 번 없이 연구실에서 연습하는 끈질긴 노력과 연습벌레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의 가녀린 몸에서 나오는 이미지하며, 폴드브라 동작을 할 때의 어깨선에서 나오는 이미지는 발레리나로서의 삶을 얼마나 혹독하게 만들며 지켜왔는지 그대로 춤 속에 반영했다.
작품 안무의 구성은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 속에 8명의 군무장면에서의 함께 어우러지는 햇살·바람·사랑의 장면들, 특히 아픔과 상처 장면의 이미지를 남성무용수들의 파워풀하고 다이내믹한 움직임으로 표현함으로서 기존 고전발레의 동작나열이 아닌 새로운 동작개발을 통한 창작발레의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다만 무용수의 부족으로 더 풍성하게 구성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듀엣에서 보인 아다지오의 움직임은 단순한 선이 아닌 입체감으로 그녀가 지닌 장점이 그대로 투사되면서 그 움직임이 한층 돋보였다.
또 음악에 맞추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음악의 주제 테마를 중심으로 확장되는 조율은 마치 인생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속에서 만나는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듯하여 목가적인 시상을 떠오르게 했다.고유한 빛을 고고히 빛내고 있는 한송이 꽃을 표현한 손 교수의 솔로부분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통해 세월의 흔적을 뒤로하고 결국 사랑이라는 따스한 위안과 생명의 소중함을 메시지로 던졌다.
손윤숙 발레단의 모던 발레의 창의적 안무의 시도가 전북 무용예술발전에 새로운 자극과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