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공감] 지역알리미 익산 '봄 느린 기차'

멈춰진 시간 춘포역…옛 추억을 누려~ 다시 달린다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춘포역’

내 고장 익산을 알리고 싶고 살리고 싶은 작은 소망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40여년전 이리역 기차 통학생이었다. 검은 교복을 입은 까마귀떼 통학생들은 황등에서 익산으로, 익산에서 군산가는 열차를, 대장촌에서 익산으로 가는 통학 기차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이 아련한 추억 한 조각을 부여잡고 40여년이 지난 2015년. 이들이 뭉쳤다. ‘봄 느린 기차’로.

 

△내가 사는 지역 알기 = 정도상·장마리 소설가, 안선호 원광대 교수(건축학과), 신귀백 영화평론가, 이정선 유아교사, 박은살 요가강사, 손인범 중학교 교사, 임탁균 사회운동가 등 뜻을 같이 하는 이가 하나 둘 모여 ‘봄 느린 기차’를 결성했다. 이들의 첫 시작은 ‘우리 익산을 어쩔 것이냐?’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영화 ‘철도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함께 본 이들은 공통된 추억을 지니는 간이역으로 춘포(春浦) 역 살리기에 시동을 걸었다.

 

이들은 역을 중심으로 한, 내 고장 익산을 제대로 알고 홍보하자는 뜻을 모으고 두 발로 지역 구석구석을 탐방하고 살폈다. 한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장을 살피던 중 이들의 눈에 가장 띈 곳이 바로 위험 진단으로 철거 중인 옛 만경강 다리와 철로가 뜯겨버린 간이역 춘포역이었다. 만경강 다리는 현재 다리의 끝 부분만 겨우 남겨둔 상태이고, 춘포역은 이미 몇 년전에 철로가 걷혀 현재는 역사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태이다.

 

춘포역은 지난 1914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驛舍)가 아름답기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 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일본인 호소가와 농장건물이 아직 남아있고, 가까운 곳에 만경강을 중심으로 한 수려한 풍경이 있다.

 

“춘포역은 어느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철로를 걷어버렸습니다. 만경강 다리는 가운데만 남기고 정교하게 끊어버렸죠. 그래서 우리는 그 끊어진 다리를 잇기 위해 김제시 청하면의 ‘새챙이’ 다리를 답사하면서 벤치마킹을 하고 의견을 주고 받았고 춘포역과 끊어진 만경강 다리 위로 드론을 날리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춘포역에 느린 기차가 달리게= 이대로 춘포역의 아름다운 추억과 풍경을 잊혀 지게 할 수 없기에 회원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철로 잇기 운동, 역사 이전, 영상 철길 만들기 등 온갖 아이디어가 총출동하고 있다.

 

일단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역에서 오래 근무했던 사람과 젊은 친구들을 불러 블로그와 SNS를 통해 전국의 열차 마니아와 추억에 목마른 사람들을 연결하려 한다. 춘포역에 관한 우선 자료를 수집했다. 신문 자료는 물론이고 역에서 오래 근무한 역무원과 열차 통학생의 기차역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구술로 확보 중에 있다.

▲ ‘봄 느린 기차’회원들이 박남준 시인의 초청 강연을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춘포역에서 임피역까지 느린 기차를 달리게 하고 싶습니다. 3년이면 가능합니다. 3년 후, 미륵사지 탑이 복원된 그 시점에 맞춰 임피-춘포간 아주 느린 열차가 개통된다면 관광객이 모여들 것입니다. 익산을 출발해서 춘포역을 거쳐 한옥마을을 둘러 본 사람들을 다시 춘포역에 실어 나르고 익산역에 들러 가락국수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임피역을 거쳐 그들은 군산에 내릴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시범 운행, 다음에는 매주 운행, 그리고 주말에 느린 기차 운행이 정례화 되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회원인 안선호 교수의 말이다.

 

아직은 시작이다. 현재는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기차역에 대한 자료수집 단계지만 득량역(驛)을 비롯한 간이역을 둘러 볼 것이다. 춘포역을 자주 답사하고 만경강과 호소가와 농장건물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 중이다. 전국의 간이역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카페와 SNS를 통해 알릴 계획도 가지고 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캠페인도 벌이고, 자료집을 바탕으로 매월 1회 신문을 발행하는 등 전국의 열차 마니아들에게 지속적인 알림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들의 목표는 ‘봄 느린 기차’를 달리게 하는 것이다.

 

손인범 교사는 “우리는 관광객들에게 학생복과 교련복을 입히고 추억의 먹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춘포역 앞에서 노을 진 철로를 걷게 할 것이다”며 “자전거를 대여하여 교련복 입은 남자가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만경강 둑까지 태우게 하는 체험도 마련할 계획이다”며 청사진을 알려왔다.

 

△원도심 살리기에 중지 모아= 오는 20일에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근대문화유산인 두동교회와 나바위성당, 그리고 익산교도소세트도 둘러볼 예정이다. 익산이 고대문화유산만이 아닌 근대문화유산을 갖춘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꺼져가는 불빛의 원도심을 살리게 하는 포부를 차근차근 실천해 나갈 것이다.

▲ ‘봄 느린 기차’ 회원들이 익산 옥수리조합 건물을 찾아 익산지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봄 느린 기차’라는 이름처럼 회원들의 걸음은 느릴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느린 행보가 커다란 역사를 이룰 것이다.

 

“누군가 노력하면 남기신 분들을 기억할 수 있다.”

 

이들의 바람대로 옛 것을 기억하고 지키는 이들의 느린 걸음이 지치지 않기를 응원해 본다.

▲ 김진아 익산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