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쳐모여 좋아하다가는

국민의 뜻 헤아리는 정당 책임 다하려면 조직 안정이 먼저다

▲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8일 창당 60주년 기념식을 갖고 100년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지난 60년간 헤쳐모여를 밥 먹듯 했는데, 100년 정당을 이룰지 의문이거니와, 설령 100주년 기념식을 성사시킨들 그 모습이 성대할지 의문이다. 적어도 최근 새정연 모습으로 봐서 그렇다.

 

새정연 창당 60주년을 놓고 새누리당은 “창당 60주년 주장은 야당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새누리당의 지적이 정치공세인 것 만은 아니다. 새누리당은 2003년 노무현 세력이 모여 만든 열린우리당이 새정연의 전신이란 시각인데,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연은 과거 열린우리당 판에 가깝다. 그래서 친노판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비노파가 문재인 대표 체제를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것이다.

 

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새정연이 지난 5월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킬 때 김상곤 위원장은 계파를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혁신위가 활동한 지난 4개월동안 친노와 비노가 계속 다퉜다. 지난 16일 새정연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된 뒤에도 파열음이 계속되는 것은 문 대표와 그를 떠받치는 친노세력 체제에 대한 혁신안이 빠진 탓이다.

 

투쟁은 혁신을 낳고, 혁신은 창조적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새정연의 내부 정치권력 투쟁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의와 선당 보다는 개인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이 강해지면서 싸구려 투쟁으로 비춰지는 것은 유감이다.

 

2000년 국민의 정부 시절 DJ 최측근 권력가 권노갑씨가 40대 젊은 국회의원들의 주먹 한 방에 정치 2선으로 물러났다. ‘천신정’이라고 불리는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이 주도하는 정풍운동의 중심 타겟이었다. 당시 DJ의 동교동계 가신 그룹은 DJ를 능가하는 호가호위 권력, 새천년민주당의 미래를 위협하는 암적 존재로 비난받았고, 차기 정권 창출의 걸림돌로 지목됐던 것이다.

 

천신정 정풍운동 결과 가장 큰 이익을 취한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익만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됐고, 사후에도 ‘친노’세력을 통한 존재감이 위협적이다.

 

권노갑을 탄핵하는데 앞장선 정동영 전 의장은 부패 권력에 맞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한 젊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가 됐다. 하지만 2002년 대선 경선에서는 노무현 후보에게 졌고,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통일부장관을 지내고, 열린우리당 의장을 했지만 친노세력과는 물과 기름이었다. 친노계의 견제에 막혀 운신 폭이 좁아졌고, 결국 고향 순창에서 칩거하는 신세다. 그는 요즘 매운 여뀌를 질근 질근 씹으며(嘗蓼) 미래를 가늠하고 있을 것이다.

 

2002년 천신정이 뜯어고친 민주당 판에서 과실을 취한 것은 노무현이었다. 대선후보 경선을 전후해 자신을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끊임없이 흔들어 댔던’ 민주당 구당파와는 대통령이 된 후 완전히 결별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친노세력은 2003년 열린우리당을 창당, 2004년 총선에서 재미를 봤지만 2007년 당을 해산해야 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힘이 조금 세진 자의 만용이었다. 야당 세력이 헤쳐모여 만든 통합민주당은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또 헤쳐모였다. 그런데 불과 1년여만에 또 ‘헤쳐모여’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패거리들이 헤쳐모여를 반복한 전통을 또 잇겠다는 것이다.

 

정당이 제대로 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면 조직 안정이 먼저다. 정풍운동한다고, 혁신한다고, 상대방이 싫다고, 정치 상황이 불리하다고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헤쳐모여 습관을 들이는 것은 책임있는 정당,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권력에 눈이 어두운 소인배들이 어떻게 100년 정당을 만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