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 - 김선

사랑을 잃고 남은

 

그리움은 남루하다

 

둥글게 말린 등은

 

감추고 싶은 무엇이

 

그 안에 있다는 뜻인가

 

나는 언제 고개 떨구고

 

등짝을 저렇게 둥글게 말아보았던가

 

그 누구의 위로도 범접하지 못하는

 

둥글게 말린 검은 숲속의 적요

 

어둠이 빛이 되는 순리의 시간이

 

사랑을 잃고 남은

 

그리움의 남루를 덮는다

 

-한 해의 타작마당에서 나는 얼마나 쓸쓸한가. 사랑은 가고 남루한 그리움만 남았다. 빈 것을 타작한 모든 것들이 둥글게 말리는 계절이다. 낙엽이 둥글게 말리고, 화려했던 꽃이 둥글게 말리고, 내 등이 둥글게 말리고, 지평선도 둥글게 말린다. 검은 숲에 들어 누구도 범접 못하는 적요를 덮고 이 가을을 견디리라. 그렇게 남루해지리라. /글 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