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귀명창은 즐겁다] 국악 즐기다보면 '얼쑤' 외치게 될 터

소리 할 줄 아는 사람 늘었지만 추임새 넣을 줄 아는 사람 줄어

▲ 박인혜 명창 공연에서 관객들이 귀 기울여 소리를 감상하고 있다.

△국악을 즐기는 사람들

 

국악원에 있다 보면 ‘국악 좋아하시는 분들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풍물반 강의실 앞에서, 판소리 수업을 기다리면서, 어떤 분은 휴게의자에 앉아 장단을 맞추고, 소리를 따라하며 흥을 낸다.

 

우리 국악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조선 후기 민속악이 부흥하고 궁궐 안에 있던 많은 음악들이 궐 밖으로 퍼져나가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전에 음악은 궐 안에 집중되었고 민간에 전승되던 음악들은 음악을 전유하던 이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부유한 농공상인이 등장했고 이들은 민간음악 부흥에 큰 힘이 되었다.

 

△추임새와 소리 한 자락

 

<2015 전주시 지속가능지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판소리 추임새를 넣을 수 있다’고 답한 전주시민의 비율이 최근 몇 년 사이 줄었다. 2011년에는 38.5%였는데 2014년에는 26.4%였다. 반면에 ‘민요나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를 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늘어났다. 2011년에 20.3%에서 2014년에는 65%에 이른다. 흥미로운 일이다. 추임새 넣을 줄 아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소리 한 대목 할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오늘날 추임새를 넣을 줄 아는 사람은 귀명창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추임새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인데 국악에 어지간히 익숙하지 않고서는 힘들다. 국악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결과 민요나 판소리 한 대목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추임새 넣을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이들이 귀명창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과 여건이 조성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명창을 만드는 귀명창

 

명인명창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오늘날에는 대통령상 수상과 문화재 보유자 지정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한마디로 귀명창이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에 명창 배출의 대표적인 등용문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모태라 알려진 ‘전주 통인청 대사습’이 있었다. 많은 관객들이 운집하는 경연의 장이었는데 판소리인에게는 기회였다.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면 그의 이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명창으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평가가 가능했던 것은 관객들이 잘하는 소리와 못 하는 소리를 가려듣는 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귀명창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명인명창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대학 졸업장이나, 수상경력, 문화재 인증서 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즐겁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아는 만큼 즐겁다’로 바꿔보면 어떨까? 평소에 존경하던 어느 학자의 연구실에 간 적이 있다. 책상 한 쪽에 자그마한 수석이 놓여 있었는데 손때가 탔는지 반질반질 했다. 그는 무관심하면 한낱 돌덩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피다 보면 생각지 못한 감흥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다. 매개는 수석이지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랜 전통으로 우리의 생각과 삶이 배어있는 국악,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얼마나 많겠는가? 들려오는 풍물소리에 춤추게 되고 주변을 잊고 연주에 심취하게 만드는 뭔가가 켜켜이 쌓여 있다. 많은 이들이 그 기쁨을 얻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외치게 될 것이다. 얼~쑤!

▲ 조세훈 전라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