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적막 - 정병렬

올가을엔 고향에 내려가 성묘를 하고

 

추석 달을 안고 다니면서

 

귀뚫이도 취해서 운다는 이슬주를 마시고

 

풀벌레랑 함께 울어야지

 

가을 적막을

 

달이 시들거리면 먹여야지

 

문간너머 빨간 전구 같은 홍시를 따 먹여서

 

고향이 환한 적막의 가슴을 보듬고

 

헐벗은 지붕에 가난 복이 익어가는 조롱박

 

덩실한 달덩이하나 보듬으면

 

열릴까

 

달이랑 박을 안고 가을 북을 치면

 

가난한 적막의 마당 황금이 쏟아질세라

 

이 가을 절 한자리 정중히 올리네

 

하늘에 선영에

 

△매급시 이슬주를 마신 화자처럼 울고 싶다. 풀벌레처럼 아무데서나 퍼질러 앉아서 울고 싶은 가을이다. 고향이 적막하면 가난한 달이 더 슬퍼진다. 양말 뒤꿈치를 꿰맬 때 어머니가 쓰시던 알전구가 빨갛게 익었구나. 홍시를 따서 시들대는 달을 꼬셔볼까. 적막을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고 싶은 조롱박이 있는 고향이다. 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