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위치한 A당구장은 초등학교 2곳과 고등학교 1곳에 인접해 있다.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와 불과 8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당구장은 지난 2013년 3월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 결과 금지행위 대상물 및 시설 ‘해제’(영업 허용) 결정을 받았다. 역시 전주에 위치한 B당구장은 인근 고등학교에서 84m 떨어져 있다. 같은 회의에서 이 당구장은 ‘금지’ 결정을 받았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심의 대상 업소 관리에 일관성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북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 2013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2년 6개월 동안의 전주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회의록을 받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회의록을 보면 A당구장에 대해서는 “크게 유해한 사항은 없어 보인다”는 의견과 “현재 당구장은 건전 생활스포츠로 규정돼 있다”는 의견으로 금지행위 대상물 및 시설 ‘해제’ 결정이 났지만, B당구장에 대해서는 “유해업소가 한 곳이라도 들어서게 되면 이후 우후죽순처럼 신청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으로 ‘금지’ 결정이 났다.
이처럼 같은 업종을 두고 ‘유해성’ 잣대가 오락가락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013년 1월과 8월 회의에서는 학교 주변 단란주점·유흥주점이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금지’ 결정을 받았는데, 2013년 9월과 11월에는 유흥주점 한 곳 씩이 ‘해제’ 결정을 받았다. 특별한 의견 개진이나 토론이 이뤄진 기록은 없다.
앞서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도 국회 이상일 의원(새누리당)이 서울의 한 유흥주점이 ‘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이후 재심 결과 ‘해제’ 결정을 받은 사례를 들며 “같은 건물인데도 기준이 오락가락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 기준과 관련해 명문화된 사항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과 위원회는 학교보건법에 따른 것인데, 여기에는 절대정화구역(학교 출입문으로부터 반경 50m)과 상대정화구역(학교 경계선으로부터 반경 200m)에 대한 정의, 금지 업종과 심의 대상 업종, 위원회의 역할 등에 대해서만 규정돼 있다. ‘유해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기준으로 결정해야 하는가’와 같은 내용은 법령에 포함돼 있지 않다.
결국 현행 법령 아래서는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가 스스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이에 맞춰 심의를 진행하는 것 말고는 해답이 없는 셈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PC방의 경우, 위원들이 “더 이상은 정화구역 내 신규 영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원칙을 정했다.
각 시·군 교육지원청은 관련 법령에 따라 학부모와 지역사회 전문가 등 13∼17명 정도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를 구성, 학교 주변 금지행위 대상물 및 시설에 대한 심의 등의 역할을 맡기고 있다.
서인기 전주교육지원청 평생건강과장은 “재산권과 학습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면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는 방안이 공론화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