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써 오던 ‘시(詩)’를 작정하고 놓아버린 시인(詩人). “무엇인가 쓰는 일로 삶을 끌고 가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시인이 시 대신 택한 것은 트위터였다.
지난 2012년 대선 국면에서 트위터에 올린 글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까지 받아야했던 안도현 시인은 이 정권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과의 소통의 끈은 놓지 않았다. 트위터가 다시 고리가 됐다. “한 후배는 이것을 접으라고 권하지만 나는 아직 내려놓기 싫다. 140자 안쪽으로 글을 써야 하는 트위터의 한계가 바로 트위터의 가능성이면서 왠지 나에게 딱 맞는 형식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글자 수의 한계로 더욱 정제하고 더욱 함축해야 하는 트위터는 시와 유사하다. 시인이 자신과 딱 맞는 형식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시인이 3년 동안 트위터에 올린 글 1만여 개 가운데 244편을 추려 <잡문> (이야기가있는집)으로 묶었다. ‘시’라고 작정하고 쓰진 않았지만 ‘시 같은 산문’이 대부분이고, 시에 대한 아련함을 드러낸 글도 여러 편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좋아서 나는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기를 쓰고 시를 읽었는데, 지금은 시나 읽으니 참 좋다. 기를 쓰고 시를 썼는데, 시를 쓰지 않으니까 더 좋다.’ ‘가끔 누가 묻는다. 시를 꼬불쳐둔 건 아니냐고… 시를 안 쓰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시 따위!’ 잡문>
시를 쓰는 사람이 시 쓰기를 중단하겠다고 작정할 만큼 답답해진 세상과 사회에 던지는 혼잣말도 여럿이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하루 종일 안개다. 길도 나무도 전깃줄도 안개다. 장작을 싣고 가는 트럭도 안개다. 책도 망원경도 다초점 렌즈도 안개다. 창밖 바람소리도 새의 울음소리도 안개다.’ ‘응석을 부리고 싶을 정도로 맑은 햇볕이 좋은 날이었다. 이 햇볕을 나 혼자만 이마에 받는 게 미안한 날이었다. 하루도 미안한 마음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내 조국의 맑은 하늘이 서러웠다.’
시인의 감성이 묻어나는 글은 압도적이다. 비와 바람, 꽃, 햇빛, 나무, 매미 등은 시인의 일상이다. ‘너는 꽃 피고 새가 울어서 봄이라지만 나는 이유 없이 아프고 가려워서 봄이다.’ ‘밤에 만경강 둑길을 건너가던 그 고라니의 귓등에 오늘밤 또 눈송이가 내려앉을까.’ ‘작년에 죽은 친구야, 벚나무 아래 놀던 사진 속에서는 빠져나가지 말아라.’
“세상의 간섭으로부터 돌아앉아 있고 싶은 안간힘”으로 휴대전화도 쓰지 않지만 “글을 쓰는 일이 다른 사람의 삶에 보이지 않게 관여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시인. “예쁜 글을 쓴 시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시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잡문> 을 “내 이마 위를 스쳐간 잡념들과 하릴없는 중얼거림”이라며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고 싶은 욕망이 스며있기도 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시도 아니고 제대로 된 산문도 아닌, 시와 산문의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긴장한 흔적”이라고 했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 글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의 시 쓰기다. 잡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