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에 속타는 농심

쌀 풍작을 맞은 농민들의 가슴이 숯 검댕이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추수가 한창인 요즘 산지 쌀값이 80kg 한가마당 14만원선 밑으로 떨어지면서 시름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농민들의 걱정이 태산처럼 쌓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세계 각국과 FTA 체결에 이어 TPP에 가입하려면 TPP 참여 12개국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쌀 추가 개방문제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TPP 가입을 위해 결국 쌀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계청에서 밝힌 올해 쌀 생산량은 425만 8000톤이다. 쌀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2% 감소했음에도 풍작으로 인해 생산량은 2.5% 늘어났다. 우리나라 쌀 수요량이 400만톤인 점을 고려하면 25만 8000톤이 초과 생산된 것이다. 이미 쌀 재고량이 140만톤에 이르는 상황에서 쌀 풍작은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쌀 대책은 너무 안이하다. 20만톤을 추가 수매하겠다고 밝혔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140만톤에 달하는 재고 쌀 문제와 밥쌀 추가 수입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9월 30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관세화를 공식 선언하면서 쌀 수정 양허표를 제출했다. 이후 1년새 쌀값이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 창고에는 재고 쌀이 넘쳐나 더 이상 쌓아둘 곳이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규정을 어겨가며 밥쌀용 수입 쌀을 저가 판매해온 것으로 국정감사 결과 드러났다. 정부는 쌀시장을 개방화하면서 밥쌀 의무수입규정을 삭제해놓고 국내 수요처를 구실로 내세워 밥쌀을 수입하는데다 이를 터무니없이 싸게 공매 처분함에 따라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목표 쌀값 23만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의 쌀값 대책은 거꾸로 가면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쌀값은 여전하다. 1996년도에도 80kg 한가마니가 14만원선이였는데 지금 산지 쌀값이 14만원대 까지 떨어졌으니 물가상승률과 농자재비 농기계임대료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손해보는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쌀 농사를 지어봐야 적자만 가중되면서 농가 5가구 중 1가구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벼랑 끝에 선 농민들은 정부를 향해 묻는다. 언제까지 농민을 천하지졸(天下之卒)로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