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투쟁할 때와 후퇴할 때를, 엄격할 때와 침묵할 때를 정확히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미국 전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 언급한 정치지도자가 성공하는 세 가지 중 으뜸 조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스스로 사임했으니, 후퇴할 때를 정확히 가려 실천하긴 한 것 같다.
야성·존재감 잃고 유약해진 야당
역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지도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결정적 순간의 선택이 있었고, 그 결과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곤 했다. 중국 장초의 일개 상장군에 불과하던 항우는 거록전투를 통해 진나라 장함을 무릎 꿇게 함으로써 초패왕의 지위로 격상하는 계기를 잡았다. 인내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입지를 굳힌 후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전국 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 현대사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 노태우의 직선제 개헌 수용, 김영삼의 3당 합당, 김대중 김종필의 DJP 연합 등은 모두 역사적 흐름을 일거에 바꾼 결정적 순간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지도자의 선택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 만큼 그 이상의 평가와 책임도 반드시 뒤따른다. 초패왕 항우는 자신의 지위를 잡는 과정에서 20만 포로를 생매장했던 악행은 줄곧 그의 발목을 잡게 되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법과 질서를 정비함으로써 에도 막부라는 안정적인 지도체제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우리 현대사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와 책임은 독자들의 양식과 판단에 의지하기로 한다.
정치인의 정치행위는 선택의 연속이다. 입법부 일원으로서 의정활동은 물론이고, 정당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정당활동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소신에 따라서 선택하게 되고, 때로는 당론에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소신과 다른 당론이 채택되면서 속이 아주 불편했던 경험도 더러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선택과 책임이다.
요즘 정치현장에서는 지도자의 결정적 선택이 실종된 듯하다. 2002년 노무현의 단일화 전격 수용 이후 국민을 감동시키거나 뇌리에 각인된 선택이 없었다. 아마도 선택에 따른 책임이 두려워서인지 모르겠다. 특히, 정치현장의 비주류는 언제든 판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선택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야당은 비주류다. 따라서 야당은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판을 흔들 기회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마치 야당도 주류인 양 판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민할 뿐이다. 야성을 상실했다거나 생계형 정치인이라는 비아냥, 존재감 상실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유약한 지도자는 결코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판 흔들어 흐름 바꾸고 정권 되찾아야
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정권을 잡아서 그들을 선택해 준 국민을 위한 가치를 구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정당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여당은 지금처럼 지켜내면 된다. 하지만 야당은 반대다. 지금처럼 하면 집권하지 못한다. 판을 흔들어서 흐름을 바꾸고 정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집권하고자 하는 간절한 모습, 지금 우리 야당에 부족한 점이고 국민을 실망시키는 원인이다. 결기어린 지도자의 선택, 야당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의 모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