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문득 이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 번쯤은 일탈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익산~장수간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번잡한 상념을 매미 허물처럼 벗어던져버리고 가을이 차창에 수시로 바꿔 걸어주는 알록달록한 액자를 보며 무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때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 깜짝 놀라 속도를 줄이고 얼른 색안경을 벗었다. 터널이었다. 토끼처럼 귀가 쫑긋 설 정도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밝은 세상을 질주했다. 그런데 또 금방 터널이 나타났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터널을 무심히 지나가는데 갑자기 고요의 연못에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풍덩 떨어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재충전의 기회로 삼겠다던 일탈은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가 버렸다. 마치 환한 빛의 세상인 양 잠깐 보여주고 금방 암울한 터널이 되어버리는 익산~장수간 고속도로! 마치 이 나라의 지난 역사를 보는 듯 했다.
그랬다. 이 나라의 지난 역사는 터널처럼 암울한 구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푸쉬킨의 시구처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 이 순간밖에 없는 것인데 우리 민초들은 언제나 내일일 수밖에 없는 내일에 희망의 등불을 내건 채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지난 역사는 민초들의 그 순수한 바람을 괴반하고 늘 짓밟아왔다. 권력을 남용하여 짓밟는 것까지는 힘없는 민초들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치자. 하지만 후대에 전해질 역사의 일기만큼은 올바르게 잘 쓰여 지고 있는 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기록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사관(史官)의 절대영역에 속한다. 역사 기록을 맡은 사람은 소설의 화자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구의 명령에도 따르지 아니하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역사를 뒤적여 보면 부끄럽게도 일부 폭군들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을 겁박하여 사초를 조작하기도 했다.
지금 이 나라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정쟁에 휩싸여 우시장처럼 떠들썩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기본만 생각하면 해결되는 것을 가지고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어떠한 일이든 사심보다 공심이 앞서면 해결된다. 사심보다 공심이 더 커다는 것은 객관성을 갖는다는 것이니 문제될 게 뭐있겠는가? 더군다나 공공의 일에 있어서는 한 치의 사심도 끼어들어서는 아니 된다.
“순망치한이라!” 잇몸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이야기다. 뭐든 씹어버릴 수 있다고 해서 이가 잇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시리고 아린 아픔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자고로 사람은 남들은 다 속여도 자기 자신만큼은 속여서는 안 된다. 남들은 속아 넘어가지만 자기 자신은 속아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역사교과서도 당연히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들이 집필하게 될 것이라고 굳이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