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그림

우리나라의 지하철이 외국 그래피티(graffiti, 건물의 벽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작가들의 표적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13년 즈음,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지하철에서 시작된 그래피티 작가들의 습격은 우리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사건(?)이었다.

 

지하철이나 열차에 그리는 그래피티를 ‘트레인 바밍(Train bombing)’이라고 부른다. 그래피티의 속성상 작가들에게 ‘움직이는 벽’으로 상징되는 ‘트레인 바밍’은 매력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그래피티는 외국작가들의 침입을 막지 못한 보안망 문제가 더 이슈가 되었지만 외국의 지하철이나 열차의 그래피티는 이미 일반화된 문화다.

 

우리에게 그래피티를 알린 사건이 또 있다.

 

2011년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 넣었던 사건이다. 그때 쥐를 그린 작가에 의해 세계적 그래피티 작가의 이름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영국 출신으로 영화감독이기도 한 뱅크시(Banksy)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카트를 미는 원시인 그림’을 도둑 전시해 이름을 널리 알린 그는 프랑스 미국 등의 이름난 미술관을 급습해 도둑 전시하거나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언어로 그래피티를 남겨놓는 작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의뢰를 받거나 허락을 받고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면 모든 그래피티는 위법이다. 뱅크시의 작업 역시 위법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Out of Gallery(거리의 갤러리)’는 자유롭고 도발적인 그만의 언어로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시키며 감동시킨다. 권력과 제도에 저항하며 시의성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예술가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다. 덕분에 ‘아트 테러리스트’란 별칭이 붙은 그는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도둑전시를 한 미술관조차 그의 작품을 영구소장하기로 결정할 정도이고 런던에서는 뱅크시가 그린 그래피티를 돌아보는 투어가 인기다. 낙서쯤으로 취급받아온 그래피티를 예술로 승화시킨 한 작가의 치열한 정신이 가져온 결실이다.

 

우리 주위에도 그래피티나 형식을 달리하는 벽화들이 적지 않다. 알게 모르게 어느 사이 우리 일상에 들어 와있는 거리의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은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우리의 벽화들은 어떤가. 아쉽게도 예술가들의 손이 닿지 않은 거리의 그림이 너무 많다.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거리의 그림들이 오히려 도시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