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은 6년 전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끈 큰 별이었다. 그의 88년 삶은 파란만장했고,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행동은 질풍노도처럼 거침이 없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만25세의 나이에 당선,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부와 맞서 싸웠다. 투옥과 의원직 박탈, 가택연금 등 숱한 압박에 굴하지 않고 단식농성 등으로 맞서 군부독재에 저항하고 결국 민주화를 쟁취해 냈다.
새누리당은 “민주화운동의 영웅이자 화신이었다”고, 또 새정치민주연합은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이었다”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정치에 입문, 고인이 달려 온 지난 60년은 한국 현대 질곡의 역사였다. 그 속에서 고인은 주인공이었다. 잇따른 대선 도전 실패와 1979년 10월 국회의원 제명 등 정치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마항쟁 발발과 유신 체제 종식의 도화선이 됐다. 자신이 청산을 외치며 싸워온 군부독재의 정치결사체인 민정당과 3당 합당을 한 것은 큰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 결과, 군부시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문민시대를 연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군부의 정치 사조직 하나회를 해체하고 부패와의 전쟁을 벌였다.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하고 대대적 경제 개혁 등을 추진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한국이 IMF로부터 긴급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초유의 ‘IMF 외환위기 사태’를 초래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면서 영호남 지역주의를 키운 중심 인물로 기록되는 등 옥의 티도 있다. 대통령 재임 시절 전북 출신 황인성 고건씨를 국무총리에 기용한 것 외에 전북과는 큰 인연도 없다. 극심했던 지역주의 때문에 전북에서 외면됐다. 망국병인 지역주의를 부추긴 박정희에 이어 김대중·김영삼도 갔다. 이제 지역주의 없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국가장으로 치러지는 영결식은 오는 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되고, 김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마련된 묘역에서 영면하게 된다. 민주화의 큰 별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