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과 극복의 의지

▲ 진창선 문학평론가
위대한 진리는 역설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고이래 석학들의 창조품인 대명지(大明智)다. 다음은 동서 성현들이 남긴 경에서의 잠언으로 역설적이다.

 

1) 가장 작은 것은 태산이요 가장 큰 것은 가을에 떨어지는 짐승의 털이다.

 

2)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마저 내 주라.

 

3) 원수지간도 부모처럼 사랑하여라.

 

한국문학의 귀재요 아나키스트로도 조명받고 있는 이상도 용서하는 것은 최대의 악덕이란 표현으로 우리를 낯설게 하지만 이 모든 표현들은 모름지기 ‘역설’의 참뜻을 이해하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깊이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역설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사전적 풀이로는 표현 구조상으로나 상식적으로는 모순된 말이지만 실질적 내용은 진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뜻은 반대로 해석된다. 예컨대 청마의 시 ‘깃발’에서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것도 역시 ‘안으로 아우성 치는 것 같은 외침’을 이렇게 모순 형용으로 표현함으로써 낯설게 한다.

 

1950년대 한국 영화 ‘비극은 없다’도 6·25 전쟁 이후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슬프고 어두운 수난의 시대였지만 스스로 이를 극복 마침내 경제 강대국이란 세계도 놀란 코리아는 이제는 베푸는 나라가 되었다. 그 바탕은 오직 국민 각자가 한 마음이 되어 전통의 상생 공동체 의식을 실천으로 보여 준 결과였다. 아는 이는 다 알겠지만 ‘한국 민족은 극복 의지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태어난다’의 학계의 발표는 길이 조상에 감사 드릴 경사로 배달겨레의 자랑이기도 하다. 역사가 있는 민족은 아름답다고 일렀으니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대대로 문사철(文史哲)을 숭상하는 문화 대국으로 이웃 나라 젖줄도 되었었다. 나라의 발전과 융성은 경제와 문화가 쌍두마차로 제 기능을 다 발휘할 때만 바람직한 것이다. 비극적 상황과 수난을 극복하고 당당히 일어선 우리는 통일 조국을 향해 기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면 문화의 기여도부터 살펴보자. 한국의 대중 문화는 한국을 새롭게 바라보는 안방 극장 드라마를 필두로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K-팝 그리고 강남 스타일 싸이의 인기는 뉴욕에서도 정상을 탈환 세계를 놀라게 하니 모두 월계관 없는 외교관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이 같은 한류 순풍은 무역 전선에서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다시 방향을 바꾸어 한국의 전문 예술 분야는 지면 제한으로 한둘만 간추려 보면 먼저 서양 음악으로는 작곡의 윤이상, 소프라노 조수미 그리고 첼로리스트 장한나는 지휘자로도 명성이 높다니 ‘한류’의 지평에 뜨는 별들이다.

 

한편 한국 문학은 2002년 올림픽 때 프랑스 문인들로부터 황석영 이문열 조정래 박경리의 대작들에 대한 세계 정상이란 극찬은 세계의 이목을 재인식케 하였다. 시에서는 노벨 문학상이 두 번 세 번이나 비껴 간 고은 시인이 프랑스 스트루가 시 축제에서 황금 화관상 수상을 비롯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로부터 영예의 대상을 받아 나라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실로 이런 공헌이야말로 세계 속의 한국 문학으로 자리를 우뚝 높이니 무릇 어찌 우리만의 영광이겠는가.

 

위대한 진리는 역설로 표현되고 나라의 발전과 융성은 도전과 극복으로 이루어진다. 겨레여 동해 푸른 물결 태양도 눈부신 아리랑의 나라 조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