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한 평의 묘지 속에 잠들어 있거나 아니면 한줌의 재가 되어 이 산천 어디엔가 훌훌 뿌려져 있다면 참으로 신세 편안할 노구들이 병원의 대기실을 꽉 매운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인들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나는 특별히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해서 어지간히 아픈 것은 그냥 버티어본다, 행여 불치의병이 걸렸을 지도 모르는데 홀수 짝수 해 찾아가며 건강검진을 받아 보라는 통지가 와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이제 살만큼 살았고 지금 이승을 떠난다 해도 별로 슬퍼할만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언제인가 혼자 떠나야 하는 길, 언제 떠나면 어떠랴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부득이 병원을 찾은 것은 다음날 기차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는데 계단에서 미끄러져 허리에 통증이 와서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거의 노인이었고 여자들이었다. 큰 병원처럼 번호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는 잊어버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편한 마음으로 수필집 한권을 끼고 뒷자리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책에서 읽은 이야기 보다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가를 더욱 맴돌았다.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들이 왜 그렇게 얘기들을 잘 하는지 늙으면 입만 산다더니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했다. 대개의 이야기들은 자기 몸 아픈 자랑이고 자식이 스물이면 뭐하느냐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간혹 모임 장소에서 구구 팔팔 이라는 건배 구호를 듣고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뜻을 알고 보니 99세까지 팔팔 하게 살자는 것이라는 소리에 기가 질렸다. 이렇게 아픈 몸 이끌고 돌아누우면서도 아이구 아이구 하는 신음 소리가 연거푸 나는데 구구 팔팔의 세월을 살려면 그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어 나는 이후로 구호를 따라 외치지 않는다.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장수를 하게 되었는가? 내가 생각하기엔 한 푼의 소득도 없는 노인네들이 이렇게 의료보험 혜택으로 병원을 찾을 수 있는 덕이 아닌가 생각 된다. 그동안 병원을 멀리한 나는 잘 몰랐는데 오늘 병원에 와서 들으니 진료비 1500원이면 주사 맞고 침 맡고 전기 치료, 온 찜질 원적외선과 안마 등 물리치료를 모두 받을 수 있단다. 더욱이 혼자 사는 노인들은 손닿지 않는 곳에 파스 한 장 부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냥 와서 누워만 있으면 편안 하게 해주므로 그토록 오래 기다려도 매일 오다시피 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물리치료가 끝났는데도 기다리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좀 더해 달라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분을 것을 보면서 참 염치없는 노인이 구나, 늙으면 스스로의 행동에 따라 노인 대접을 받는다는데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의 수명이 길어 졌으니 오래 오래 대우받고 살려면 돈을 아껴 쓰라던 말을 해 준 지인의 말을 떠 올려 본다. 짐스러운 노후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많은 노력이 필요 할 것 같다. 첫째 건강해야겠고 둘째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좋겠으며 셋째는 느긋한 정신적인 여유로 젊은이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삶의 끝자락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그리고 빛 고운 단풍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된다면 복 받은 삶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그런 복이 올 수 있도록 신께 기도하며 살련다.
△김호심씨는 〈한국문인〉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전북문협와 행촌수필·전북수필·신문학회원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부안문화원 시낭송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 지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