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얘기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생각을 흔히 ‘쌍팔년도 얘기’로 치부하던 상황을 고려하면 세대를 뛰어넘는 드라마 인기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88년도 서울의 허름한 뒷골목에는 정감 넘치는 소박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있다.
눈여겨볼만한 것은 모든 에피소드들을 관통하고 있는 인간관계의 메커니즘이다.
어쩌다 특별한 반찬이라도 할라치면 옆집으로 뒷집으로 나르기 바쁘고 아이들은 자기네 안방처럼 스스럼없이 친구 집을 드나든다. 생활비 걱정하는 이웃을 위해 찐 감자 사이에 돈 봉투를 넣어 부뚜막에 놓고 가는 기지도 발휘한다. 이웃도 아닌 가족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 있는 이들에게는 큰 슬픔도 금방 잦아들고 소소한 기쁨도 기하급수적으로 배가된다.
시대는 변하고 변하는 것이 세상이라지만 지금 우리 세태를 돌아보면 쌍팔년도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짐짓 이해가 간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간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급기야 칼부림에 목숨까지 잃는 극단적인 사건들도 종종 발생한다. 말문이 채 트이기도 전부터 남이 건네는 음식은 절대 받지도 먹지도 말라는 교육이 선행된다.
누군가 승강기를 동승하기 싫어서 저만치 들려오는 ‘잠깐만요’ 소리를 무시하고 서둘러 닫힘 버튼을 누른다. 신뢰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에서 이웃은 내 달콤한 잠과 가정의 평온을 위협하는 경계대상 1호 불청객에 불과하다. 그때는 곤궁하고 배고팠다. 넉넉하지 못하고 옹색했다.
하지만 사람의 온기로 모자람을 채워가던 시기였기에 이웃은 고맙고도 특별한 존재였다.
본격적인 연말연시 시즌이다. 시작과 끝은 맞물려 있듯이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아쉬움과 설렘 사이에서 사람들은 갈팡질팡 감정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거리는 연일 불야성을 이루고 망년회, 송년회 등 갖가지 핑계로 술자리가 계속된다. 하지만 이런 들뜬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겨울이 더 춥고 쓸쓸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에 집중하고 내 가족에 몰두하는 사이 외롭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연말연시는 혹독한 고난의 시기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들불을 일으키듯 각박해진 세상에서도 늘 불씨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어서다.
연말이 되면 시청에는 기부의 손길이 줄을 잇는다. 쌀, 연탄, 라면, 김치 등 생필품에서부터 큰 목돈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는 독지가들도 있다.
연말과 양 명절에 유행처럼 반짝 불고 마는 기부 물결이라도 더없이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핵가족, 맞벌이 가정, 독거노인, 싱글족들의 증가로 전통적인 가족기능이 약화된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잘 만난 이웃 하나가 먼 가족 열보다 더 의지가 될 수 있다. 이 겨울 내 주변에 어렵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보자.
또 올 겨울 그동안 서먹했던 이웃들과 소통의 문을 활짝 열고 드라마 1988속 그 시절의 향수를 재현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