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 기억하는 겨울운곡으로 초대

▲ 김형연 고창군 경리팀장
△생물권보전지역 고창, 땅의 기억

 

고창은 고인돌 선사유적부터 동학농민혁명까지 역사, 문화, 예술의 흔적이 땅의 기억으로 새겨진 고장이다. 더불어 생태의 고장이다. 지난 2013년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고창군 전역이 지정된 까닭이 그렇다. 고창은 드물게 행정구역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유네스코로부터 생태 가치를 인정받은 핵심지역은, 고창갯벌(람사르 습지이다), 선운산도립공원, 운곡람사르습지, 동림저수지, 고인돌세계문화유산 지역이다.

 

호젓한 숲을 걸어 땅의 진면목과 만나게 하는 곳이 바로, 운곡습지(雲谷濕地)다. 구름 고랑 운곡습지는 고창 아산면 운곡리 일대 1.79㎢를 핵심지역으로 하는 내륙습지이다.

 

수원지(水源池)로 쓰기 위해 150가구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물을 가두기 시작한 1980년대, 사람의 걸음이 멈춘 운곡저수지와 그 주변공간이 지난 30년 시간을 두고 스스로 복원돼 태고적 습지의 원형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자연은 그 품안에 멸종위기종 수달과 삵, 황새와 담비, 새호리기, 팔색조를 비롯해 천연기념물 붉은배새매, 황조롱이를 포함한 549종의 다양한 생명을 깃들어 살게 해주었다.

 

△선사로부터 지금, 이 순간으로 흐르는 운곡의 길

 

운곡의 구름을 헤치고 자연의 속살을 살피는 길은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유적에서부터 시작한다. 청동기 선조들이 공동체를 영위했던 자취를 따라 쥐겁재를 넘어 다섯 갈래 길이 모이고 흩어지는 오베이골을 지난다. 오색딱따구리, 곤줄박이, 어치며 박새들이 소리로 소리로 걸음을 보챈다. 생태탐방로로 조성한 길을 따라 만나는 생태연못, 억새며 부들, 노랑어리연꽃 들이 화사한 모습으로 반긴다. 길은 휘휘돌아 비로소 저 깊고 청명한 운곡저수지로 이어지고, 운곡서원과 샘터, 멀리 고려청자도요지로 흐른다.

 

그 길 끝에 생태마을 용계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운곡습지의 다채로운 생태를 살피고 기록하는 일부터 원시체험, 철새체험, 천체관측체험, 생태음식체험 등 헤아릴 수 없는 자연체험이 가득하다. 봄이면 꽃비처럼 분분분 날리는 수많은 꽃이파리로부터 생명의 힘을 되찾고, 여름과 가을, 마침내 맞은 운곡의 겨울이다. 크고 작은 생명의 흔적을 거두며 눈이 부신 흰 것들 속으로 스스로 동면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는 다시 거대한 생명의 자취를 만난다. 돌아오는 것들의 소란 때문이다. 운곡은 다시 겨울철새들에게 제 빈 둥지를 내어주었다.

 

△땅과 숲의 박동을 기억하는 운곡의 겨울

 

봄이면 봄, 여름이거나 가을이거나 마침내 겨울이거나, 운곡은 모든 생명의 고향이다. 생명의 박동을 간직한 채 스스로 일어나 스스로 빛나는 다른 모든 땅들의 모범. 운곡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억 한 줄 더 써내려간다.

 

우리를 둘러싸고 온갖 색들이 명멸하던 화려한 가을이, 이제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생육을 멈추고 몸 안으로 모든 기운을 수렴하는 자연, 고창의 땅 곳곳에서 다음 봄을 준비하는 낮은 목소리만 도란거린다. 땅과 숲의 박동을 기억하게 하는 겨울, 운곡으로 걷기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