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존·전시·교육하는 곳이다. 건립의 주체에 따라 국립, 공립, 사립 등으로 나뉘는데, 공립박물관은 광역 또는 기초자치단체가 세운 박물관을 말한다. 국립박물관이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곳이고, 사립박물관이 개인의 관심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면, 공립박물관은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공립박물관은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중요한 문화기반시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4년 말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기반시설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809개 박물관 가운데 공립박물관은 전체의 41%인 332개다. 특히 전라북도에 있는 40개의 박물관 가운데 절반 이상인 24곳이 공립박물관이며, 이 공립박물관들은 지역적으로 장수군을 제외한 13개 시·군에 고루 분포해 있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 공립박물관이 전북도민의 곁에 있으며, 친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나 부안청자박물관 등 몇몇 곳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서 외부 관광객을 유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처럼 공립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박물관들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과연 모든 공립박물관들이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문화시설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반문해 볼 필요도 있다.
일부 공립박물관은 주변지역 박물관과 유사한 주제로, 비슷한 유물을 전시해 차별성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건립 당시 부지 확보에만 급급한 나머지 건립 이후에 접근성이 떨어져 관람객 유치가 어려운 곳도 있다. 또한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예산과 인력 지원이 사라져 간신히 간판만 달고 있는 곳도 있다.
전라북도의 24개 공립박물관 가운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등록을 완료한 박물관은 17개관이고, 나머지 7개관은 아직까지 등록을 하지 못했다. 등록하지 못한 박물관은 대부분 소장품이 기준 수량에 못 미치거나 학예사가 없는 곳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등록 박물관이라고 하더라도 앞서의 지적에서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립박물관이 내실 있게 건립·운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건립 전 단계에서부터 지자체의 박물관 건립 계획에 대한 컨설팅을 실시하고, 건립의 타당성과 실행력을 검증하는 사전평가제를 거쳐 신축 또는 증·개축에 대해 국고를 지원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운영 중인 공립박물관에 대해서도 평가인증제 실시를 통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정책이나 지원보다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가 갖고 있는 인식의 전환이다. 주민들은 박물관을 옛 것을 보여주는 고리타분한 곳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자긍심을 느끼는 곳으로 여겨야 한다. 더불어 그곳을 단순히 전시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교육과 공연 등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센터이자 지역 커뮤니티센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는 박물관을 자치단체장의 치적을 쌓고 홍보하는 도구가 아니라, 각 지자체의 정체성과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자 지역 문화관광의 안내 공간으로 인식하고 재창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박물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