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일년내내 관광객으로 넘친다. 물론 기후환경이 휴양지로 적합한 것도 있겠지만 태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다. 오랜 기간 불안정한 정치상황으로 가능성에 비해 경제성장이 늦은 반면에 아시아 각국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던 시기에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유럽의 식민지를 거쳤고 2차대전을 전후해 미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서 고유문화가 많이 깨어지고 미국식 현대문화로 평준화되었던 시기에 유일하게 태국만은 전통의 고유문화를 단절 없이 지켜내려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 생활문화가 핵심
사전적의미의 문화란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 정신적 과정의 모든 산물이라고 정의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상품의 가치로 인정받는 문화는 전통의 고유한 생활문화가 외세의 영향으로 단절되거나 보편화되지 않고 고유한 생활 속에서 현대화돼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업디자인을 위해 문화기반의 스토리발굴을 쫓는 필자에게 태국은 남다른 지역으로 자주 찾게 된다. 세계최고의 빈부격차가 있는 나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나라, 복잡한 정치환경 속에서도 아직 존경받는 왕이 존재하는 나라…. 태국은 참으로 설명이 많이 필요한 나라다. 그만큼 스토리도 많이 담겨있다. 정치만 안정된다면 세계 최고수준의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도심
문화는 어떤 이유로든 단절되지 않아야 한다. 단절될 경우 빈자리에는 보편화된 문화가 자리를 잡게돼 더 이상의 상품가치를 잃게 된다.
얼마 전 전주시에서 전주의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듣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주의 변화하는 모습은 드라마틱하기만 하다. 10년 전만해도 필자가 재직 중인 전주대학교 주변은 그야말로 농지가 대부분이었다. 학교 주변에 꿩이 날아다니는 광경이 흔했다. 한옥마을의 지난 10년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신도심과 혁신도시의 건설속도는 놀랍기만 하다. 우리 눈으로 하나의 도시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만들어 지는 것을 쉽게 보는 세상이다. 변화의 속도를 보며 전주의 가치높은 고유한 문화가 사라지고 보편화된 문화로 대체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다.
△삶의 질 고려하는 개발
우리는 근대화를 거치며 ‘빨리빨리문화’가 유난히 강하게 자리잡았다. 물론 이러한 문화가 우리의 경제를 급속하게 발전시킨 원동력도 되었지만 폐해도 낳았다. 많은 것들이 유지·발전 보다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실 가장 쉬운 개발은 있는 것을 부수고 새롭게 건설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서혁신도시 건설 속에서 붉은색의 비옥한 황토바닥이 콘크리트로 덮혀지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혁신도시가 삶의 질이 고려된 새로운 개념의 친환경혁신도시가 될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여유가 많았던 민족이다. 한옥에는 자연의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구조를 우선 하였고, 자연의 일부로 정원을 배치했다. 친환경적인 삶이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느림의 미학이 우리의 문화이기도 했다. 느림을 단순한 게으름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느림 속에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줘 경솔한 판단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조금 늦게 결정한다 해도 정확한 판단이 더욱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도심에서 만나는 비둘기를 자세히 보면 발가락이 제대로 붙어있는 비둘기를 보기가 힘들다. 그만큼 치열한 도심 속의 삶을 엿보게 된다. 인간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산업화된 대도시의 삶은 마냥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어쩌면 산업화가 가장 뒤졌다는 슬로시티 전주에서의 우리의 삶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윤택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막연한 산업화를 외치기 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를 보존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전주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