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간다는 것

▲ 김관춘 (사)한·중지역경제협회 호남본부장
주워들은 얘기다. 평균 수명이 짧던 시절의 환갑잔치는 집안의 큰 행사였다. 정년퇴직을 한 뒤 집에서 소일하던 백수께서 하루는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이 모습을 본 아들이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랫동네 친구가 오늘 육갑잔치(환갑)를 하는데 거기 가는 길이다”고 말했다. 때마침 어머니도 외출채비를 하길래 행선지를 물었더니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야채인간(식물)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어서 문병하러 간다”고 하더란다. 웃자고 한 얘기일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흐르는 세월은 비켜가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만난다. 그런 노화의 과정에 찾아온 것 중의 하나가 기억력 손상이다.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얼른 기억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댄다.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익숙한 용어도 생각이 나지 않아 엉뚱한 단어를 뱉어 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용어가 떠오르면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쥔다. 늙어가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늙어도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를 준비해야 하는데 돈과 건강과 삶의 의미가 그것이다. 늙으면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은퇴하기 전에 노년기의 소비생활을 감당할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노년기 삶의 자기결정권을 지키려면 우선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생활습관이다. 자기 결정권을 지키는 또 다른 조건은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젊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 놀이, 사랑, 그리고 연대를 계속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최선이다. 외로움은 노년기 삶의 가장 무서운 적이라서 그렇다. 누구나 멋진 노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이를 품격 있게 먹을 수 있는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이런 걱정을 할 정도면 늙어 가는게 축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얼마 전 언론에서 보도한 곤궁한 노년의 현실을 보면 늙어가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품격이나 삶의 질을 운운할 정도의 여유로운 노인을 제외하면 누군가에게 나이 듦은 품격과 존엄, 은빛의 연륜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해야 할 차가운 현실이 된다. 종교단체가 나누어 주는 500원짜리 동전을 받기 위해 추운날씨에 길을 나선 노인들. 라면 한 봉지 값도 안 되는 이 작은 동전 하나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앞다투어 돈을 받으려다 시비가 붙기도 한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혹은 밀린 전기료와 수도세, 손주의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노년의 자존심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라고 뉴스는 고발한다. 우리나라 노인 1000명 가운데 16명은 백세인생을 살게 됐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러나 한국 노년층의 상대 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 12.6%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도 국가는 이런 문제를 소홀히 하거나 애써 외면한다. 오히려 나라경제를 위해 노인우대 기준을 높이자는 논의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개선할 현실적인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다. 어렵지 않다. 작지만 위대한 ‘손가락 혁명’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다. 이 겨울이 끝나면 곧 선거철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