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재직 시절 회고

합리적 일 처리 자부했지만 뒤돌아보니 부족한 점 많고 베풀지는 못한 것 같아 후회

▲ 배성수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사무총장

1년간의 경찰간부후보생 교육을 마치고 1978년 9월 경위로 임관, 정읍경찰서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한 이후 2005년 1월 전북지방경찰청장에서 명예퇴임하기까지 26년여 간 경찰에 근무하였다. 전북에서는 지방청 경비계장, 무주·고창 경찰서장, 지방청 정보과장 등을 포함, 총6년 정도 근무하였다.

 

필자는 경찰에 근무하는 동안 경찰대학 생활관에 붙어 있던 “여기를 거쳐 가는 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는 글귀를 볼 때마다 느꼈던 사명감을 잊지 않고 올바르게 근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해 가면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퇴직 후 뒤돌아보니 부족하거나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았고, 후회되는 일도 많다. 고은 시인의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시구(詩句)가 가슴에 절절이 와 닿는다. 그러나 인덕은 많아서인지 좋은 상사와 부하, 동료들을 많이 만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기도 했다. 능력도 별로 없는 내가 상사들의 인정을 받고, 또 운이 좋아 58명의 동기 중 계속 선두로 승진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는 받기만 했지 주거나 베풀지는 못한 것 같아 늘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필자는 경찰청의 정보와 방범부서에서 많이 근무했는데, 공개할 수 있고 기억에 남는 것은 주로 방범부서에서 있었던 일 같다. 가장 진통을 겪었던 일은 노래방에 대한 규제법을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노래방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부작용도 적지 않아 적절한 규제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술을 파는 노래방(후에 단란주점으로 개칭)은 보건복지부가, 술을 팔지 않는 노래연습장은 경찰청이 각각 담당하기로 함에 따라 노래연습장 규제 관련 규정을 신설하게 되었다. 3개 TV의 노래방 규제 관련 생방송 토론 프로에 출연, 당대의 논객이라던 ‘여원사’ 김재원 사장 등과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새롭다.

 

또 문민정부 초기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슬롯머신업 폐지의 실무를 맡았는데, 관련법 개정안이 황인성 총리 등의 반대로 국무회의에서 보류되었을 때 이해구 내무부장관에게 강력히 건의, 임시 국무회의까지 소집하여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카지노업은 설치목적이 관광 진흥인데도 경찰에서 담당하고 있던 것을 대학 후배인 문화관광부의 모 서기관과 협의하여 문화관광부로 이관하였다. 권한 이관을 반대하는 상사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문화관광부가 관광진흥법 개정안 부칙으로 경찰청 소관의 사행행위등규제및처벌특례법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이관하였다.

 

1987년 방범국 외근계장 시절에는 실효성도 별로 없고 직원들에게 과중한 부담만 주던 호구조사 제도 폐지의 실무를 맡았는데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경호실장 결재까지 거쳐야 했으므로 무척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방범국장 시절에는 경찰청의 건의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께서 금융감독원장과 이한동 국무총리에게 금융기관의 자율방범체제를 강화토록 직접 지시, 관계장관 회의와 은행장 회의까지 소집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던 기억이 새롭다.

 

경찰에서 있었던 일들을 지금 와 뒤돌아보니 후회투성이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인생은 연습이 없으니 어쩌랴....... 이제 남은 인생이라도 후회 없도록 잘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경찰은 후배들이 더 잘 해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