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치와 민심

총선 표심 얻으려면 보다 파격·획기적인 개혁 정책 내놓아야

▲ 객원논설위원
20대 총선이 채 두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구 획정은 물론이고 각 정당의 경선 원칙과 공천 룰도 안갯속이다. 정치권의 이기적인 리더십과 무책임이 극에 이르고 있다.

 

지금 야권의 화두는 호남이다. 호남정신, 호남정치, 호남정치 복원 등 정당 지도자들마다 낯 간지러울 정도로 호남을 들먹이며 구애하고 있다. 19대 국회 4년 내내 나몰라라 해 놓고 이제 와서 호남 운운하는 꼴이 안쓰럽다.

 

호남정신은 무얼 의미하는가. 정치에서의 호남정신은 민족적,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좌고우면하지 않는 애국정신, 불의에 대한 저항정신, 반독재 투쟁정신 등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충무공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도 그런 예이고 5·18민주화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의 반봉건 제폭구민 정신도 호남정신을 상징하는 예다.

 

호남이 제1 야당에 실망한 이유는 야당성을 상실한 데다 혁신을 외면하고 무기력과 무능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부 구성에서 호남을 홀대하고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면서도 책임을 짓지 않았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해법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았다. 야권분열-신당창당의 빌미를 제공한 원인이다. 호남은 이제 일당 독주를 마감하고 경쟁적 구도 속에서 20대 총선을 치르게 됐다. 새누리당, 간판을 바꿔 단 더민주당, 안철수의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 연대 등 1여 다야 구도다. 국민의당은 안철수-천정배-박주선-김한길 등 한 지붕 네가족 체제다. 정당 간 또는 당내 경쟁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다.

 

경쟁은 품질 향상의 원동력이다. 경쟁이 없는 선거는 무의미하다. 라면가게를 독점 운영하고 있는 곳과 서너개 있는 곳 하고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천양지차다. 서비스와 품질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역과 주민에 대한 정치 서비스가 높아지고 의정활동도 치열해 질 수밖에 없게 된다. ‘설렁설렁’이나 ‘대충’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경쟁의 혜택이다.

 

호남은 1987년 평화민주당 창당 이후 경쟁다운 경쟁구도를 갖지 못했다. 호남정치가 소외 당하고 품질이 형편 없게 된 것은 경쟁부재 탓이 크다. 공천이 곧 당선이었으니 주민보다는 중앙당의 지도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4·13총선은 이런 독점적 구도를 깨고, 경쟁을 통한 정치 서비스를 한 단계 높이는 선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현안들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으면 한다. 선거판이 조용하면 기득권 세력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좀 시끄럽더라도 현안들을 들춰내 문제를 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마당이 돼야 한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서 까 벌려야 자양분이 공급되는 이치와 같다.

 

선거는 곧 심판이다. 선거 때만 을(乙)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갑으로 회귀한 국회의원, 국회의원 자리와 특권에 만족한 국회의원,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한 국회의원, 매사에 피동적인 국회의원은 쌀 속의 뉘다. 뉘를 가려내는 것이 선거다.

 

호남은 오랜 기간 정치적 소외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온 지역이다. 호남민심은 선거 때마다 야당의 변화를 이끈 힘의 원천이었고, 강력하고 유능한 대안야당을 요구해 왔다.

 

4·13총선에서도 기득권 타파와 야당성 회복, 호남정신을 구현할 정당과 후보에 방점이 찍힐 것이다. 호남민심을 얻으려면 보다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개혁정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립서비스만 난무할 뿐 이런 정책들이 보이질 않는다.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다면 호남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