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 재능 기부란?

▲ 김지훈 국악기획단 아따 대표

대학생 무렵, 한참 레슨을 받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 다녔다. 당시 선생님은 개인 음반도 발매했으며, 지역 축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공연무대에 오를 만큼 인정을 받는 대금연주가였다.

 

어느 날 레슨을 받는 도중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얼핏 내용을 들어보니 대학 교수가 전화를 걸어온 것 같았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선생님의 언성이 높아졌고, 휴대폰을 놓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도 화는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후에 건넨 이야기는 이러했다. 이번 달에 저명한 학자들과 유명 인사들이 전주에서 모임을 갖는데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연주를 해주길 바란다는 것.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 건네 온 말이 무척이나 불쾌했다고 한다. 좋은 의미가 있는 자리이니 공연을 재능 기부의 형식으로, 페이 없이 진행해달라는 것이었다.

 

문화산업시대, 예술에 정당한 보상을

 

2년 전 봄, 연주하는 것이 좋아 한옥마을 버스킹을 시작했다. 거리의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지속적으로 공연을 했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 없는 전성기가 시작된 시점. 운이 좋게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 후로 공연을 해달라는 연락을 자주 받았다. 그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어차피 공연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왕이면 우리 공간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것. 언뜻 보기엔 그럴싸했다. 공연을 편하게 할 장소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상황이 된다. 내가 좋아서 하는 공연과, 그들이 불러서 하는 강요된 공연. 이러한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면 도리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때도 많다. “예술가가 좋아서 하는 거지 돈을 바라고 하면 되냐”는 논리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돈을 밝히는 못된 예술가로 치부되는 것이다.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고민은 닳고 닳은, 해묵은 이야기 주제가 됐다.

 

문화산업 시대가 오고 문화를 경제적인 가치로 어떻게 환산할 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예술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찰제가 없고, 작품에 대한 감동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돈으로 예술을 계산하기는 어렵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시대에, 예술이 꼭 필요한 것이냐고 되묻는 이도 물론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 되는 시대.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지지만, 예술가를 신성시하는 시선은 굳건하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여전히 돈의 세계와는 무관한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가난한 예술가로 남아야 할까? 예술가 역시 보통의 영역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학교 강의실에 앉아 경제학과 전기공학 등 전공지식을 배울 때, 우리도 음악학, 전통음악선율 등을 배웠다. 그들이 사회로 나가 청년무급인턴 등 열정페이를 강요 당할 때, 재능기부의 압박을 받는다.

 

청년에게 열정페이 강요하지 말아야

 

‘재능’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다.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더불어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후천적인 능력도 포함된다. 예술가가 가진 것은 재능 뿐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란 모두에게 그렇듯 우리에겐 전공이다. 타고난 감각, 그리고 밤낮으로 이어지는 후천적인 능력으로 한 편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예술가들에게 아무런 보상 없는 제안은 하지 않았으면, 또 그러한 제안을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