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관객은 스크린에 투사되는 허구적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감춰둔 욕망과 마주한다. 영화는 상징, 은유 등으로 무장하여 관객의 깊은 곳까지 속속 파고든다. 끝내 관람자가 부인하는 감정과 만나고 나서 고개를 든다.
영화 「캐롤」을 보면서 리플리 증후군을 떠올렸다. 영화 원작이 리플리를 탄생시킨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인 점도 있고, 사람이 꿈을 잃었을 때 어떤 행태를 보이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컸는데 영화가 리플리를 환기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암시하듯 한 시퀀스를 보여준다. 담배 연기 자욱하고 시끌벅적한 술집 장면이다.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술 마시는 탁자가 클로즈업된다. 한 청년이 말한다. “나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술을 마셔!” 그러자 다른 사람이 잇는다. “나는 깨어있는 시간이 무서워 술을 마셔”라고. 내일과 깨어있는 시간은 지금 술 마시는 시점에서 보면 미래다. 결국, 미래가 두렵고 무서워 술 마신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이 최선이라는 이야기인가? 글쎄다. 술 마시기 직전 상황의 연장선에 있는 다음 시간에 대한 부담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적 느낌으로 술집은 삶의 정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시간으로 가기 위한 대기소. 거기 웅성거리는 수많은 사람은 대부분 전에 탔던 차를 탈 것이다.
1950년대 미국 뉴욕.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 분)는 4살 난 딸아이를 둔 주부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남편과 맞지 않아 이혼소송 중이다. 남편 ‘하지’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아내의 동성애적 성향을 문제 삼아 아이의 양육권은 물론 면접권도 허락하지 않겠다며 버틴다.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 분)은 사진작가를 꿈꾸는 맨해튼 백화점 인형코너 점원이다. 결혼을 원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썩 내키지 않아 갈등하고 있다. 어느 날 캐롤이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갔다가 테레즈와 만난다. 둘은 서로 강한 눈빛을 교환한다.
크리스마스 휴가. 하지는 캐롤에게 아이와 함께 플로리다에서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자고 말한다. 거절하는 캐롤. 딸을 데리고 떠나는 남편 차 뒤에서 심란해 하던 캐롤은 테레즈에게 동·서 횡단 여행을 하자고 제의한다. 흔쾌히 대답하는 테레즈. 저돌적이고 무모하다 싶은 여행이 시작된다. 태연을 가장하는 것일까. 침묵 속에서 교환되는 미소는 다소 어색하기까지 하다. 밀려드는 상념들…. 밤이다. 숙소 커튼이 닫히고 불이 꺼진다. 캐롤이 테레즈의 몸에 손을 댄다. 호응하는 테레즈. 둘은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리플리적으로 본다면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은 동성애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들의 행태를 놓고 상상해 보자. 참자기와 거짓자기 그리고 이들이 원래 가던 길과 지금 들어선 길에 대하여. 전에 꾸었을 꿈까지 불러 모아 재료로 삼아보자. 담배 연기 자욱하고 시끌벅적한 술집을 연상해도 좋다.
김은하 외 공저 〈영화치료의 기초〉에 의하면 ‘상상은 모든 담론에 자기(Self)를 투입하도록 한다. 이는 우리가 이미지를 볼 때마다 상상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지각하고, 태도를 수용하며, 통찰을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푼다. 또 무어(Moore)는 시각적 은유의 사용이 관객(상담에서는 내담자)에게 더 영적인 수준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경험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상상 후 아하 경험을 했다면 통찰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화적 공감과 동정 속에서 자신의 생에 자발성을 갖게 되는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모두 동성애라 말하지만 여행은 숨을 곳 없는 두 여인의 피난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허영에 사로잡혀 거짓자기로 세상을 사는 우리 영화 「거짓말」의 주인공 ‘아영’의 반문이 머릿속에서 파문을 일으킨다. “넌 안 하니? 거짓말?”
● 연재를 마치며
우리의 오감은 세상을 지각하는데 있어 카메라와 마이크로폰과 같다. 자연히 무수히 많은 영화를 찍게 되는데 이를 내면영화(Inner Movie)라고 한다. 내면영화는 자신 안의 다양한 욕망과 무의식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자신이 미리 저장해둔 장면들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한 편의 영화가 무엇을, 어디를 자극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2년여 동안 총 45편의 글을 게재했다. 최근 영화를 고르다 보니 오락과 미학적 측면이 강조된 점 없지 않다. 부족한 실력으로 메시지 전달에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 또한 크다. 혜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끝〉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