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맞으며

▲ 고재흠 수필가
올해로 97주년 3·1절을 맞이한다. 먼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독립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고, 투철한 사명감과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기에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이제 우리는 국제화 시대에 자부심을 느끼고 여러 나라와 동등하게 교류하며 한류열풍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3·1절은 일제 식민 통치 아래에 1919년 3월 1일을 기해 독립 운동가를 비롯하여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분연(憤然)히 일어난 민족적 항일 운동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삼일절을 맞이하며 3·1 정신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 계승해 나가야 한다.

 

우리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적 유산을 중심으로 사적지를 만들고 독립운동 가족들을 돌보며, 아직도 타국에서 돌아오지 못한 무덤이나 기념비를 들여와 박물관 건립하는 일을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일은 역사를 바로 알고 사적을 돌아보며 3·1정신을 일깨우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국가관과 주권을 확립하는 일이다.

 

3·1운동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예가 많지 않은 대규모의 집단적 저항 운동으로, 광복에 대한 한국인의 염원과 일본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린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9년 3월 1일 이른 아침부터 파고다 공원에는 수많은 학생과 주변 주민들이 몰려 공원 주변까지 운집되었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자, 독립선언을 하려는 청년 33명 중 손병희 대표가 팔각정 단상에 올라 품속에서 독립선언서를 꺼내어 큰 소리로 감격스럽게 낭독하였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변에 모여 있던 수많은 군중이 몰래 숨겨온 태극기를 손에 들고 한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그것이 바로 삼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3·1운동은 숨죽여 살아온 순수한 백성의 염원이며, 억압과 탄압의 외침이었다. 그들은 오직 민족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놓고 독립만세 운동을 하였다.

 

97년 전 일제 식민 통치아래 ‘3·1 독립만세’는 전 민족의 하나 된 목소리였기에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러나 그로부터 27년 뒤, 광복 후 1946년 처음 맞은 3·1절에는 좌익과 우익이 갈라져 기념식마저 따로 가졌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로 인하여 한일 외교관계가 경색해 오던 중 지난해 11월 3년 반 만에 한일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이뤄졌다. 회담의 의제는 일제 36년 동안 위안부 문제, 교과서 왜곡된 문제, 독도 문제 등 수없이 많은 탄압과 박해 행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니라,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한 점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힘을 모아 선진국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국가발전 목표와 통일의 방향을 정립하고, 경제 구조를 개혁하여 생산력을 강화하는 제2의 3·1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삼일 독립정신을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킬 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