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맞이하다

▲ 김지훈 국악기획단 아따 대표

작년 여름. 평소 알고 지내던 선생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에너지 자립마을로 유명한 임실 중금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연극작품을 하나 기획해달라는 것이었다. 전통 음악공연을 주로 기획했던 나에게 연극을 기획한다는 것은 조금 생소한 작업이었지만,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날씨가 참 좋았던 주말. 임실 중금마을을 찾아가 담당자와 함께 극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와 비교해서 청정지역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농촌의 환경오염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특히 오래 전부터 몸에 배인 습관 그대로 농촌의 어르신들은 쓰레기를 소각하고 있었다. 농사에 쓰이는 비닐과 농약병 폐기 문제가 컸다. 결국 중금마을 할머니들의 쓰레기 분리수거 이야기를 주제로 교육형 연극을 만들기로 했다.

 

80대 여배우들을 만나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여든이 넘은 분들이었다. 집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를 전부 분리수거 해서 버렸다. 요구르트나 우유팩은 깨끗이 씻어서 버릴 정도로 분리수거가 몸에 배어 있었으며, 잘못 분리된 쓰레기를 다시 보기 좋게 분리수거해 놓았다.

 

우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할머니들의 삶 그대로를 무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환경에 대한 할머니들의 생각과 평소 자주 쓰던 말투, 행동을 대본에 녹이기 시작했다.

 

농번기와 함께 본격적인 연극연습이 시작되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은 성치 않은 몸과 대사를 외우는 일, 그리고 바쁜 농사일로 힘들어 했다. 연습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힘들겠으니 다른 사람과 하라’며 연습을 빠지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연극 공연을 안 해도 좋으니 영상이라도 남겨놓자고 참여를 당부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들과의 밀고 당기기로 가을을 보냈다. 김장철이 다가왔다. 김장을 위해 고향을 찾은 할머니의 아들과 손자, 며느리들은 자연스럽게 연극을 연습하는 할머니를 봤다.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대본을 들고 연극을 준비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나 보다. 이내 그들이 연극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할머니들의 연습 영상을 가족들에게 보내주며, 수시로 중금마을의 소식을 전했다.

 

그 뒤로 할머니들은 스스로 대사를 외워오기 시작했다. 중금마을에 갈 때마다 음식을 싸가던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할머니들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우리와의 연습을 매우 즐거워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중금마을의 할머니들은 연극배우가 되었다. 올 한 해에도 많은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제9회 그린웨이 축제 개막식 메인무대에 초청되었으며, 임실군 마을 순회공연도 하게 된다. 연말에는 할머니들의 영상을 작은 영화제 출품되기로 했다.

 

재생되길 바라는 마음은 더 애틋

 

할머니들의 삶과 쓰레기는 묘하게 교차된다. 여든이 넘어가는 할머니들은 스스로의 삶을 관심 받지 못하는 쓰레기와 닮아 있다고 본다. 분리수거를 통해 쓸모 있는 물건으로 재생되길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더 애틋했다. 이번 공연 기획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그들의 삶에 촘촘히 스며드는 과정, 또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작업일 수도 있다.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만물이 푸른 봄날을 뜻으로 인생의 젊은 의미를 뜻한다. 여든 넘어 푸른 봄날을 맞이한 소녀같은 할머니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