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변산반도 모습은…

정재철 백산고 교감 〈사진으로 보는 해방전 부안풍경〉

▲ 1932년 백산공립보통학교가 발간한 앨범에 수록된 사진으로 일제시대 일본인 아베 교장이 학생에게 가마니 짜는 법을 지도하고 있다.

정재철 부안 백산고등학교 교감이 일제강점기 부안지역의 풍경과 주민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으로 보는 해방전 부안풍경> (밝)을 펴냈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관심을 갖게 된 ‘지역사’에 대한 자료수집과 글쓰기에 대한 결실이다.

 

책은 사진과 지역에 전해오는 이야기, 인물을 매개로 일제강점기 부안의 모습을 추적했다.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와 변산면 대항리를 잇는 해창다리(변산교)는 1937년 개통됐다. 해창은 부안읍에서 변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조그만 포구였지만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이뤄진 이후 마을은 사라졌다. 하서면 두포천을 잇는 큰 다리와 갑문이 완성된 것은 1935년. 두포는 하서에서 상서면이나 주산면으로 갈때 거쳐야 하는 큰 포구였다. 다리가 놓이자 근동의 상업도 활기를 띠었는데, 1960년대 말부터 계화도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두포는 쇠퇴했다. 1890년 주산면 신천마을에 천주교 덕림공소가 들어섰다. 주민에게는 ‘무내미공소’로 유명한데, 이곳에서는 학교를 열기도 했다. 부령공립국민학교(부안초등학교)에는 일본군 막사가 세워지기도 했다. 1944년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은 시기, 일본군 1개 연대가 미군의 서해안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부안에 주둔했다.

 

1938년 동아일보 이근영 기자가 신문에 연재한 ‘변산반도 탐승기’는 정읍에서 줄포, 내소사, 청련암, 봉래구곡, 월명암에 이르기까지의 비경을 소개했다. 1927년 완공된 백산교의 총 공사비는 2만8000원으로, 부안군청 건설비용의 2배가 드는 대공사였다.

‘시골 역사선생의 지역사 찾기 부제’가 달린 책은 부안지역이 지니고 있는 아픔과 이름없이 스러져간 인물 찾기에 집중했다.

 

교통 요충지였던 백산삼거리, 1936년 백산보통학교의 수학여행 이야기, 부안사람들의 시네마천국이었던 소화극장, 1938년 줄포소학교의 가을운동회, 같은해 변산해수욕장의 풍경 등을 들춰본다.

 

김낙선 이태섭 서응오 등 한말 부안 의병과 조국 해방을 꿈꾼 사회주의자 김철수, 강제징용된 14살 변산 소년, 일본인 교장을 패대기친 임창규 등도 조명했다.

 

저자는 고창 영선고등학교와 부안 백산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