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변호사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정의·진실 외면한 사법부 '흑역사' 들춰

인혁당 사건 등 17건 기록 엮어 "잊어서는 안돼"

‘재판과 역사는 서로 맞물려서 작용과 반작용을 되풀이해왔으며, 그중에서도 정치적 사건의 재판은 역사의 연역과 귀납에 이용되는 중요한 사실(史實)로 꼽힌다. 잘못된 재판은 그릇된 역사의 싹이 되고, 열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재판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탐구하는 실증적 작업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줄곧 시국사건을 맡았던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가 펴낸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창비)는 정의와 진실을 외면했던 사법부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독재와 군사정권으로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이 말살됐던 시절, 압제에 휘둘린 피고인을 세운 법정은 법과 정의보다는 권력의 편에 섰다.

 

1975년 사형이 언도된 인혁당 사건 피고인들에게 법은 2007년 재심판결에서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이미 사형이 집행된 후였다. 지금도 잊을수 없는 이름으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됐던 여정남을 기억하는 한 변호사는 법의 이름으로 죽음을 당한 이들은 돌아올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재판이 밝혀주지 않는 시국사건의 진실을 법정 밖 세상에 알리고, 미래 세대에게 전해주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변호 활동을 넓혀 증언자·기록자로서의 소임을 행한 것”이라며 “나아가서 현대사에 얼룩진 정치적 사건의 진상을 재판 중심으로 파헤쳐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 1980년 내란음모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는 김대중 대통령(첫 줄 오른쪽 두 번째).

책에서 다룬 재판은 8·15 해방 후 일어난 정치적 사건 17건이다. 여운형 암살, 반민특위, 진보당과 조봉암, 경향신문 폐간, 소설 <분지> 필화, 동백림, 원간 <다리> 지 필화, 대통령 긴급조치 1호와 4호, 인혁당, 3·1민주구국선언, 김재규의 10·26, 김대중 내란음모, 문익환 목사 방북, 전두환 노태우 내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등 한국 현대사에 얼룩진 사건들이다. 이가운데 <분지> 필화와 인혁당사건 등 9건은 직접 변호를 맡았다.

 

이들 사건 중 2009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에 무죄 판결이 나왔으며, 2010년과 2013년에는 긴급조치 1·4·9호가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 2004년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선고 공판.

한 변호사는 이들 사건의 진상을 재판 중심으로 파헤쳤다. 글 속에 그는 변호인이나 피고인 또는 방청객으로 등장한다. 재판기록을 비롯한 문헌자료는 물론 그의 체험과 견문을 토대로 썼다.

 

그는 “지난날을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깨달음도 얻고 역사의 교훈도 터득할 수 있으며, 올바른 미래를 가꾸어 나갈수도 있다”면서 “어제와 오늘의 역사를 쉽게 또는 일부러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 국민의 ‘망각 방지’에 일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책의 글은 2014년 10월부터 1년여 동안 경향신문에 연재한 것을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