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48년 애독자 전주시 동아당한약방 양복규 원장 "음과 양 골고루 다루는 다양한 기사 써주길"

아침 신문 읽고 하루 시작 / 20여년 간 칼럼 필진 활동 / '굴뚝속의 호롱불' 출간도

▲ 창간호부터 48년간 꾸준히 전북일보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전주 동아당한약방 양복규 원장이 신문을 보며 전북일보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전북일보가 가장 ‘거시기’하니까 48년간 꾸준히 보죠.”

 

지난달 28일 오전 전주시 전동 동아당한약방.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팬 양복규(78) 원장은 최근 날짜인 전북일보 한 부를 뽑아들더니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봐요. 여기 설명에는 10명이라고 되어있는데, 사진을 보면 11명이거든. 틀리잖아?”

 

그는 “이 나이에는 신문을 가까이하다 보니 별 희한한 습관이 생겼다”며 첫 만남부터 일침을 가했다.

 

1968년, 전북일보를 통해 전라북도의 변천사를 읽어온 양복규 원장은 다식(多識)하다. 그러나 소박하다.

 

전북일보를 논평해달라는 질문에 “요새는 전북지역에 일간지가 10여 가지 된다고 해요. 그래도 전북일보가 가장 ‘거시기’ 하니까 많이 보죠”라고 했다.

 

양 원장은 1967년 고향 순창을 떠나 전주에서 나홀로 한약방을 시작했다. 도중에는 이런저런 시련도 있었지만 전북일보를 보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속에서 삶의 행복을 찾았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게 된 양복규 원장은 동암고등학교와 전북도립장애인복지관 설립에 앞장서는 등 ‘장애인의 대부’로 불리며 사립학교 이사장 협의회 부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당시 협의회 회장이었던 고(故) 서정상 전 전북일보 회장과 함께 한 저녁 식사자리에서 양 원장은 “미스전북 선발을 할 때 심사기준을 3명은 키가 크고, 3명은 키가 작고, 3명은 피부가 하얗고, 3명은 피부가 검은 사람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미의 다양성론을 설파했다고 한다.

 

이에대해 서 전 회장은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런 아이디어를 살려서 매주 칼럼을 한 편씩 써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했고, 전북일보 애독자인 양복규 원장은 자그마치 20여 년 동안 필진으로도 활동했다.

 

오랜 기간 계속된 그의 지필 칼럼이 집약된 ‘굴뚝속의 호롱불’이라는 책도 그래서 세상에 나왔다.

 

칼럼은 냈지만 전북일보와 관련된 인터뷰는 처음이라는 양 원장은 돌아가신 서정상 전 회장과 술자리도 많이 가졌다고 했다. “그 양반은 꼭 맥주하고 비빔밥만 주로 먹는다. 골치 아플 때는 저기 경상남도 함양에 농월정이라고 있는데, 거창 가는 길 쪽인데 주로 거기 가서 쉰다. 저녁 내내 이야기하시고 맥주만 잡수신다”고 회고했다.

 

한약방에서 아침 첫 진찰을 하기 전에 전북일보를 본다는 양 원장은 “그래야 누구를 만나더라도 대화가 되니까”라고 들고 “여러 면 중에서도 사설 면이 제일 좋다. 신문은 사설이 가장 중요한데 논설위원들이 베테랑들이라서…”라며 웃었다.

 

전북일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양 원장 덕에 약방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덩달아 전북일보를 보게 된다.

 

어느 정도 인터뷰가 무르익자 양복규 원장은 ‘아차’하며 종업원을 시켜 다락방에서 책 한 무더기를 가지고 내려오도록 했다. 자세히 보니 수 십년 전부터 최근까지의 전북연감이었다. 거기에는 1966년 전북연감도 보였다. 전북일보에 대한 사랑이 전북연감에 까지 두둑이 쌓인 것 같았다.

 

양 원장은 “전북일보에 더욱 더 다양한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특히 잘하는 것은 잘했다고 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음과 양을 골고루 다뤘으면 더욱 좋겠다”며 전북일보 발전을 기원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