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박물관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인 뮤즈(Muse)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유럽에서 박물관이 오늘날과 같은 기능을 갖추고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다. 그 전까지는 왕족과 귀족들이 권위와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미술품과 골동품 등을 저택에 소장하며 일부 특권층에게만 관람을 허용했다. 대영 박물관·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프랑스혁명 후 루브르 궁전에서 박물관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박물관은 1908년 순종 때 창경궁 내에 설치한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으로 알려져 있다. 고고유물과 고미술품 중심으로 꾸려졌으며, 이듬해 일반에 공개됐다. 이왕가박물관은 광복 후 덕수궁미술관으로 존속하다가 69년 국립중앙박물관에 통합됐다. 역사 속에 갇혔던 박물관이 오늘날에는 다양한 방식의 체험과 교육이 이뤄지는 지역의 중심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중소형의 전문 박물관도 매년 증가하고 있고, 주민들이 박물관의 능동적 주체로 나서는 에코뮤지엄까지 등장했다.

 

1990년 개관한 국립전주박물관이 2012년 기획전시실을 시작으로 4년에 걸쳐 전시실을 전면 개편한 뒤 새롭게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박물관 측은 새 단장과 함께 지역사회와 지역문화를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일 ‘황병근 선생 기증유물특별전’이 개막했다. 황병근 성균관유도회 전북회장은 지난 1999년부터 선친인 서예가 석전 황욱 선생(1989~ 1993)의 서예 작품과 소장품 5000여점을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한 장본인이다. 당시 전주박물관장이었던 이영훈 현 국립중앙박물관박물관장은 곧바로 박물관에 독립적인 석전기념실을 개설했다.

 

국립박물관에 개인 이름의 전시실이 마련된 것만으로 석전의 명예일 수 있다. 그러나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개인 소유의 문화적 자산을 사회에 선뜻 내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박물관 측이 이번에 석전의 흉상을 만들고 기증자의 이름을 단 두 번째 특별전을 마련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증자인 황병근 회장의 선의는 상대적으로 선친의 명성에 가려졌다. 박물관의 이번 특별전은 석전이 남긴 예술적 성취를 지역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 기증자의 뜻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박물관을 지역 속에서 살아 숨쉬게 하는 데는 이런 기증자의 뜻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