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오랜 시간 도심지 역할을 했으나, 도시계획과 개발, 기능의 변화에 따라 그 쓰임을 다하고 이제는 낙후되고, 슬럼화된 지역을 대변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는 곳. 그러던 원도심이 도시재생의 코어(core)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재개발 재건축, 주거환경개선, 문화 리노베이션 등 지방자치단체가 주목하는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그렇게 조성된 원도심은 그곳만이 지닌 유니크한 정취와 콘텐츠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게 되고 걷고 싶은 거리,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사랑받게 된다. 또한 자연스럽게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인, 다양한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유입되면서 볼거리가 풍부해지고 지역의 매력도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결코 반갑지 않은 무자비한 침입자가 들어온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 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이라는 용어는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 Glass)가 구도심 지역에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자 싼값에 임대료를 내고 거주하던 원주민과 예술가들이 되레 외곽으로 밀려나 가는 현상을 지칭해 만든 단어이다.
전주 역시 이 무자비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전주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수요에 맞춰 상업시설들이 증가하면서 임대료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초창기 한옥마을의 독특하고 품격있는 정취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던 예술인들은 정작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인접한 동문거리, 서학동 예술인마을, 자만마을 등으로 밀려나야 했다.
문제는 이 곳 들마저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문거리는 전주시가 한옥마을의 성공사례에 힘입어 동문거리를 문화예술거리로 조성하고자 2012년에서 2015년까지 4년간 23억75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자한 곳이다. 시민 놀이터를 비롯해 예술창작 거점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점차 예술인들과 관광객의 유입이 늘고 있는데 최근 2~3년 사이에 임대료가 세배로 뛰면서 예술가들이 다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표준공시지가 및 가격에 따르면 한옥마을 지가는 단독주택의 경우 지난 7년 동안(2006년~2013년) 4.5배, 주택부지만 거래된 경우엔 지난 5년간(2009년~2013년) 10배 가까이 상승했다. 매매가의 상승은 당연한 결과로 임대료의 상승을 초래하고 결국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회전율 높은 획일화된 상가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만일 다양성과 품격과 정성이 사라진다면 한옥마을은 무엇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을까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문화는 단시간 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옥마을 변화의 방향과 속도감을 조절하는 것은 행정의 몫일 것이다. 자본의 집중으로 생기는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결하려고 할수록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장기적인 완화정책을 실시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지역민의, 지역민을 위한, 지역민에 의한 공유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도시 발전 프레임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