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고, 은행나무처럼 장수한다. 예로부터 십장생(해, 달, 산, 물, 거북, 사슴, 학,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으로 사랑받아 왔다. 천연기념물이 된 선운산 장사송처럼 수령 수백년 되는 소나무가 전북에서만 51주나 된다. 매난국죽을 능가하는 군자의 성품을 오롯이 간직한 대한민국 대표 수종인 것이다. 애국가 가사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소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처럼 한국인에게는 소나무처럼 변치않는 기상이 깃들어 있다.

 

소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 나무 다이아몬드다. 그래서 금강송이란 이름도 생겼다. 쭉쭉 뻗은 최고의 목재다. 김제 이건식 시장이 고향 지킴이를 강조하며 사용한 ‘등 굽은 소나무가 고향 지킨다’는 말도 있는데, 소나무는 쭉쭉 뻗은대로, 혹은 굽은대로 그 모양이 수려하고 쓰임새도 많다.

 

소나무는 옛 가옥의 주재료였다. 특히 궁궐과 한옥, 사찰 등 규모 있는 건축물에 금강송이 사용됐다. 소나무가 주요 목조 건축재가 된 것은 한반도 전역에 분포, 조달이 용이했던데다가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탄력 있고 내습성까지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나이테에 따라 목질의 강약이 심하고 접착성이 나쁘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생활 가구의 알판이나 널, 기둥 등으로 널리 쓰인다.

 

조상들은 굽었으면 굽은대로 다듬어서 건물 서까래용으로 썼다. 활모양으로 크게 굽었더라도 대들보로 사용하는 등 구조학적 지혜를 발휘했다.

 

소나무는 서화의 중심에 있다. 조선시대 김정희의 세한도, 김홍도의 송하취생도, 신라 솔거의 황룡사 노송도 등 인문화는 물론 민화에서도 소나무는 단골재료다. 조선시대 충신 성삼문은 낙락장송이 되어 백설이 온 천하에 휘날리더라도 독야청청하겠다고 했다.

 

소나무에는 서민 애환도 담겨 있다. 보릿고개를 넘던 선조들은 솔가지 꺾어 껍질 안쪽에 있는 속살을 발라 내 주린 배를 달랬다.

 

조금 있으면 송화가루가 뿌옇게 흩날리는 녹음의 계절이다.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이 고향인 ‘송화백일주’는 명주 중 하나다. 추석 명절의 꽃인 송편도 솔잎이 있어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소나무 문화권이라 불릴만 하다.

 

그 소나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1988년 부산 동래 금정산에 상륙한 재선충병 방역에 실패, 올들어 군산시민의 허파 월명공원 등이 초토화 됐고, 김제 만경에서도 감염 소나무가 확인됐다. 소나무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