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윤리와 책임

지난 2002년 일본 최대 유제품 회사인 유키지루시 유업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 1925년 설립된 이 회사는 일본 햄·소시지 시장의 80%를 점유하며 연 매출 13조원에 달하는 식품 대기업이었다. 잘 나가던 유키지루시의 몰락은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부도덕성 문제였다. 2000년 6월 유키지루시 오사카 공장에서 제조된 저지방 우유를 먹은 사람 1만4000여명이 집단 식중독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회사 경영진은 사건의 은폐 축소와 변명 등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급기야 소비자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일본 정부는 오사카 공장 폐쇄를 명령하는 한편 유통 중인 유키지루시유업 제품의 판매 중지 및 회수를 단행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키지루시는 2002년 호주산 소고기를 일본산으로 속여 팔다 적발됐다. 화가 난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고 결국 유키지루시는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우리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면 분통이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1년 4월 서울의 한 병원에 급성 호흡부전 임산부 환자가 잇따라 입원하면서 이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 수는 어린이와 임산부 등 사망자 228명을 포함해 1528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옥시레킷벤키저(옥시)를 비롯 롯데마트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 등 관련 기업들이 지난 5년동안 유족과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보상 요구를 묵살해왔다. 옥시의 경우 피해자들이 영국에 있는 본사까지 찾아갔지만 외면했고 한국 회사명을 바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올해 들어서야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가습기 살균제 관련기업들이 허둥지둥 사과하면서 보상 운운하고 있다. 그것도 유족이나 피해자가 아닌 언론을 향해서. 더욱이 옥시는 피해자들의 폐손상 원인이 봄철 황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 사이에 공분이 일었다.

 

당초 지난 1996년 카페트 항균용으로 승인된 문제의 살균제 성분이 가습기 용도로 바뀐 경위나, 서울대 연구팀의 유해성 연구용역이 왜곡된 경위 등도 의문투성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과 시민단체들은 옥시제품 불매운동에 나섰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옥시제품의 매출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게 언론보도다.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정부의 책임과 기업의 윤리의식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반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