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대표 프로그램인 ‘전주 프로젝트: 삼인삼색’이 올해부터 ‘전주시네마프로젝트(Jeonju Cinema Project)’로 명칭을 바꾸고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그동안의 제작 지원에 더해 배급까지 돕는다. 첫 대상은 김수현 감독의 ‘우리 손자 베스트’, 조재민 감독의 ‘눈발’, 오스트리아 출신의 루카스 발렌타리너의 ‘우아한 나체들’. 세 편 모두 세계와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과 비판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전주시네마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 감독을 만나봤다.
■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 "인정 갈구 청년·노인 버디 무비"
“전주국제영화제와는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 같은 사이죠. 지지·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즐겁게 잘 임했고 또 그만큼 좋은 결과를 내야겠죠.”
‘우리 손자 베스트’는 김수현 감독의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2012년) 이후 4년만의 복귀작이다.
완고한 정치적 신념을 품고 살아가는 20대 청년과 노인의 수상한 우정을 통해 동시대 한국 사회의 세태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청년 역할은 구교환, 노인 역할은 동방우로 개명한 명계남이 맡았다.
데뷔작 ‘귀여워’(2004)과 ‘창피해’(2011) 등에서 보여줬던 독특한 캐릭터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은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도 이어진다.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괴팍한 태도를 보이지만 인정받기를 바라는 두 남자의 버디 무비다.
감독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며 “영화 속 주인공들이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든 행로를 보이지만 저변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감독은 영화에서 이들에 대한 이해나 비난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그는 관람 팁으로 “굉장히 노련하고 익살스러운 중년배우와 거친 날것 느낌의 신인 배우의 코믹 연기가 환상이다”며 “둘의 호흡을 따라가면 영화를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 '눈발' 조재민 감독 "인간 민낯 드러낸 자전적 영화"
조재민 감독은 단편영화 ‘징후’(2013)로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촬영상을 수상해 한국영화계의 유망주로 꼽혔던 신예다. 영화 ‘눈발’은 전주영화제와 명필름영화학교의 첫 협업 연출작이자 장편 데뷔작.
그는 원래 스릴러 장르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얘기를 하라’는 교수님의 조언으로 ‘눈발’을 탄생시켰다.
눈이 오지 않는 마을, 경남 고성으로 전학 온 고등학생 민식은 자신이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이미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는 예주를 괴롭히는데 동참한다. 그러던 중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된다. 폭력적인 세상에서 서로 위안이 되는 과정을 통해 삶과 인간의 민낯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감독이 실제 중학교 때 겪었던 일을 모티브로 한 자전적 성장 영화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주인공은 나 자신, 우리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며 “우리는 방관자가 아닌 행동하고 이해하는 소통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은 “1년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시작과 다른 방향으로 간 부분도 있지만 인물, 연출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면서 작품이 탄탄해졌다”며 자신감을 비췄다.
■ '우아한 나체들' 루카스 발렌타 리너 감독 "부조리한 현대인 나체촌 빗대"
창의적인 세계관과 스타일로 매번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루카스 발렌타 리너 감독.
전주국제영화제의 인연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영화 ‘전쟁을 준비하라’로 영화제에 초청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발탁, 신작 ‘우아한 나체들’(로스 데센테스·Los Decentes)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아르헨티나의 폐쇄적 부촌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젊은 여인 벨렌이 우연히 비밀스러운 나체주의자 클럽을 목격하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담고 있다. 나체촌의 충격적인 풍경, 부조리한 현대인의 삶의 조건을 대담한 필치로 묘사했다.
감독은 “배우들이 대부분 나체로 연기해야 해서 캐스팅이 매우 어려웠다”며 “실제 나체주의자들을 섭외해 배우들과 함께 촬영했다”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경비가 삼엄한 부촌과 나체주의자 클럽을 함께 나타내 가난과 중산계급의 이데올로기, 극단적 폐쇄가 공존하는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긴장을 표현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자금 조달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 그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으면서도 활동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받게 돼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