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리뷰 개막작 '본 투 비 블루'] 중독, 속도가 붙으면 멈추지 못하는 것

▲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코엔’ 형제 감독의 ‘인사이드 르윈’이 걸렸던 자리에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를 만났다. 패배의 세대(Beat Generation)를 노래한 1960년대 초반부 미국사회의 음악가란 점에서 주인공이 닮았다. 포크송의 전설이라는 ‘밥 딜런’의 기세에 눌린 것 까지 합하면 동질성이 크다. 앞 영화의 주인공 ‘데비브 반 롱크’는 동가숙서가식 하면서 자기 노래를 지키기에 급급했다. ‘나를 매달아 주오(Hang me, oh Hang Me)’라며 삶은 정말 비참한 것이냐고 물었다.

 

본 투 비 블루는 트럼펫의 풍운아라 불리는 재즈 음악가 ‘쳇 베이커’(에단 호크 분)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한다. 노래 곡명이자 그의 생을 단적으로 설명한 문장일 수도 있는 제목은 볼수록 씁쓸하고 아프다.

 

정점에서 한 뼘 더 올라가기가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사는 게 따분해서였을까. 언제부턴가 그는 헤로인을 하기 시작한다. 점점 횟수가 늘어나면서 감시 대상이 되고, 급기야 불량배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앞니 대부분을 잃게 된다. 손가락 없이 피아노를 칠 수 없듯 앞니 없이 트럼펫을 불 수는 없는 법. 다 끝났다며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난다. 다행히 검은 피부를 가진 천사 ‘제인’(카르멘 에조고 분)이 곁을 지켜준다.

 

둘이 함께하는 공간은 대부분 캠핑카다. 사랑을 나누고 꿈을 재설계하는 곳은 하얀 파도가 힘차게 밀려드는 바닷가 모래밭이고. 그 속으로 멀리, 때로는 가까이 일출 장면이 들어온다. 떠남의, 씻음의, 희망의 메시지가 반복되는 것이다.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연습은 계속되고 점점 트럼펫 소리가 달라진다. 감미로운 노래가 이어진다. 정교함이 사라졌지만 새로운 음색이 생겼다며 주변에서 좋아한다. 공연 신청이 줄을 잇는다. 이제 뉴욕 공연을 잘 마치면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 뉴욕공연 날이다. 오디션 계획으로 제인이 불참한다. 혼자가 된 쳇은 경쟁자들의 비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대기실에서 헤로인을 주사한다. 공연이 시작된다. ‘섬 웨어 오버 더 레인보’란 노래가 감미롭게 울려 퍼진다. 창 너머에서 그의 세상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시사회에서 만난 ‘로베르 뷔드로’ 감독은 “음악, 인종, 사랑, 그리고 중독에 관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고 현재와도 닿아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중독을 강조한 이유가 뭘까. 컴백하기 어려움을 강조하는 것이려니 싶다. 우리 영화 ‘설행- 눈길을 걷다’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주인공 ‘정우’는 중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독이 뭔지 알아? 속도가 붙으면 멈추지 못하는 것 이라고.”

 

‘21세기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흐느낌’ 이라는 재즈와 함께 명멸한 실재인물 쳇 베이커. 그는 말년에 작게나마 자기를 인정해주던 유럽을 좋아했으며 1988년 ‘암스테르담’에서 절명했다고 한다.